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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민 (펌)이름으로 검색 03-05-05 22:59 조회3,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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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들 적극적..."결석률 높지만 다시 수업해 기뻐"
  
▲ 알쿠디스 초등학교의 교사들이 5일 사담 후세인에 대한 찬사로 시작하는 수학 교과서와 그에 대한 생일축하 인사로 돼 있는 영어 교과서를 펼쳐 보이고 있다.
/바그다드=李哲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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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무런 왜곡 없이 많은 내용을 가르치게 됐습니다.”
전쟁 탓에 45일간 닫혔던 교문이 활짝 열린 지 3일째인 5일 오전 바그다드 시내 알 무한디신구(區)의 알쿠디스 초등학교 교무실. 복도엔 “사담 없이 빛도 영광도 없다”는 후세인 찬양 구호가 반쯤 찢긴 채 아직도 남아 있고, 낮에도 수시로 터지는 콩 볶는 듯한 총성(銃聲)에 500명 전교생 중 20%가 결석했지만, 교사들은 ‘후세인 없는 교육’의 꿈을 한껏 키웠다.

1학년 남학생반 담임인 하이파 알카시(Alkasi·45) 교사는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사담은 우리의 지도자, 구세주’라고 가르쳤다. 그렇지 않았으면 난 죽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그가 보여준 1학년 수학책 첫 장에는 ‘이 책에는 사담 후세인의 지혜가 담겨 있다’는 구호와 ‘신이 구하신 이라크의 수장(首長)’이라는 설명이 붙은 후세인의 사진이 2쪽에 걸쳐 게재돼 있다. 5·6학년 영어 교사인 위다드 아지즈(Aziz·43)가 펼친 영어책의 ‘생일 축하 인사’ 편에는 벽에 걸린 사담 초상화를 향해 어린이들이 영어로 “생일 축하합니다(Happy birthday!)”라고 말하는 그림이 나온다. 그는 “꿈에서도 그의 사진을 볼 정도로 공포 정치였다”면서도, 그랬던 자신이 우습다는 듯이 웃었다.

‘생일 축하’ 얘기가 나오자, 교사들은 저마다 두 달씩 준비했던 사담 후세인의 생일 축하 행사를 ‘악몽(惡夢)’처럼 쏟아냈다. “아이들이 촛불, 꽃, 그림 그리기, 축하인사 카드 보내기 등에 매달려야 했다”, “연중(年中) 가장 중요한 교육 행사였다”…. 두아 자밀(Jamil·46) 교감은 “지금까지는 정부가 무서워 사담의 힘을 주로 가르쳤는데, 이제 자유롭게 역사와 지리 등 다양한 과목을 왜곡 없이 깊이 있게 가르치게 됐다”고 말했다. 알카시는 “이라크라는 집이 무너졌으니 새로 지어야 한다”고만 했지만, “아이들에겐 엄청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걱정했다.

아이들은 이미 전쟁과 약탈로 다칠 만큼 다쳤다. 이날 자이납(Zaynab·6)과 테바(Theba·10) 두 딸을 학교에 데리고 온 엄마 에틸 모하메드(Mohammed·32)는 “아이들이 폭발음만 들려도 울음을 터뜨린다”며, “어쨌든 아이들이 다시 공부하게 돼 아주 기쁘다”고 말했다.

‘새 교육’은 4일 바그다드 시내 무스탄시리야 대학 문과대학 건물에서 만난 대학생들 사이에도 최대 화제였다. 약탈과 방화가 휩쓴 이 대학은 온통 깨진 유리창과 부서진 벽돌, 검게 그을린 벽, 쓰레기더미뿐이었다. 하지만 휴교 중인 학교를 찾은 문과대학생 10여명은 4일 오후 ‘교과 과정의 현대화’ ‘새 총장·학장의 선출 방식’ 등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과거 집권당인 바트당의 핵심 간부였던 총장과 학장들은 모두 사라졌다.

“1주일에 3~4시간씩 들어야 했던 아랍의 역사와 바트당 역사, 후세인 개인 숭배를 교묘하게 섞은 정치과목인 ‘민족 문화(national culture)’는 즉각 폐지돼야 한다”, “영문법 강의도 너무 낡았다. 옥스퍼드·케임브리지대 출판서적들을 참고해야 한다”, “총·학장은 정치색 없는 인물로 학생들이 투표하자”….

영문학과 2학년생인 가브 야신(Yaseen·21)은 “과거에 학장에게 낡은 교과과정을 불평하면 ‘정부 고등교육과학연구부가 결정한 것이라, 내 일이 아니다’라는 답만 들었다”고 말했다. 같은 학과의 아흐메드 라티프(Lateef·23)는 “모든 학생들은 대학 내 청년바티스트 사회주의 정당에 가입해야 했고, 거부하면 결코 학위를 못 받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그러나 “이제 외부 세계와 다시 연결됐고, 학문적으로도 더 밝은 미래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붙박이 책상을 제외한 모든 의자를 도난당한 이 대학 중앙도서관의 탈릴 알 조하이리(Zohairi·34·도서관정보학) 관장도 “이라크는 완전히 밀폐됐고, 새 책은 들어온 것이 거의 없었다”며 “이제 새 세상이 열리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대학 본관 건물 벽, 대형 후세인 초상화가 붙어 있던 자리엔 지금 “우리 중에 바트당원은 없다”, “모든 사람은 자유의 새 이라크에서 하나다”라는 구호가 나붙었다.



( 李哲民기자 chulmin@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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