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동포 미디어 베를린리포트
커뮤니티 새아리 유학마당 독어마당
커뮤니티
자유투고
생활문답
벼룩시장
구인구직
행사알림
먹거리
비어가든
갤러리
유학마당
유학문답
교육소식
유학전후
유학FAQ
유학일기
독어마당
독어문답
독어강좌
독어유머
독어용례
독어얘기
기타
독일개관
파독50년
독일와인
나지라기
관광화보
현재접속
252명
[자유투고] 자유·토론게시판 - 타인에 대한 약간의 배려 말고는 자유롭게 글을 쓰시면 됩니다. 어떤 글이든지 태어난 그대로 귀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열린 마음>(타인의 흠결에 대해 관대하고 너그러움)으로 교감해 주세요. 문답, 매매, 숙소, 구인, 행사알림 등은 해당주제의 다른 게시판을 이용하세요. 이런 글은 게시판 사정에 따라 관용될 때도 있지만 또한 관리자의 재량으로 이동/삭제될 수도 있습니다. 펌글은 링크만 하시고 본인의 의견을 덧붙여 주세요.

재밌는 SZ 기사를 번역하실 수 있는 분?

페이지 정보

작성자 fatamorgana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1건 조회 2,282회 작성일 14-09-08 16:55

본문

안녕하세요.
우선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 글 읽고 많이 느끼고 갑니다. 아래에 부족한 번역 올립니다. 잘못 이해하여 옮긴 부분이나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가 처한 답답한 현실이 조금은 설명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제목: "신자유주의 지배 체제, 왜 오늘날 혁명이 불가능한가에 대하여"

일 년 전 베를린 무대에서 안토니오 네그리와 내가 서로 토론했을 때, 두 가지 서로 다른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정면으로 맞부딪혔다. 네그리는 신자유주의 지배체제라는 „제국“에 대해 범 세계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들에 심취하고 있었다. 그는 공산주의적 혁명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고, 나를 회의주의자 교수로 일컬었다. 네그리는 저항적이고 혁명적인 서로 얽혀있는 대중, 즉 „다중(多衆, 멀티튜드)“을 강조하며 주장하였는데,  그는 분명 이것으로 이 신자유주의라는 제국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나에게는 공산주의적 혁명가가 취하는 이러한 입장이 너무나도 순진해 보였고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나는 네그리에게 어째서 오늘날에 혁명이 더이상 가능하지 않은 지 설명하려고 했다.
어째서 신자유주의 지배체제가 그토록 안정적인가? 어째서 이에 맞서는 저항들이 그토록 적은가?  어째서 이 저항들은 모두 수포로 끝나고 마는가? 어째서 점점 더 커지는 빈부격차에도 불구하고 혁명이 더이상 가능하지 않은가? 이를 설명하려면, 권력과 지배가 오늘날 어떻게 작동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지배체제를 설치하려는 사람은 저항을 없애야만 한다. 이는 신자유주의 지배체제에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지배체제를 설치하려면,  앉히는 권력(setzende Macht)이 필요하고 이러한 권력은 자주 폭력을 동반한다. 하지만 앉히는 권력은 체제를 내부로 안정화시키는 권력과 동일하지 않다. 마가렛 대쳐가 신자유주의의 선구적 투사로서 노조를 „내부의 적“으로 다루고 폭력적으로 퇴치하였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신 자유주의 아젠다를 관철시키기위한 폭력적인 개입은 체제를 유지하는 그러한 권력은 아니다.

체제를 유지하는 권력은 더이상 억압적이지 않고, 유혹적이다.

통제된 산업 사회에서 체제를 유지하던 권력은 억압적이었다. 공장 노동자들은 공장 소유주들에 의해 잔인하게 착취를 당했다.  그리하여 공장 노동자들에 대한 폭력적인 착취는 저항과 반기로 이어졌다. 여기서는 지배하는 생산 관계를 무너뜨릴 수도 있는 혁명이 가능했다. 이 억압적인 체제에서는 억압도 눈에 보이고, 억압을 하는 이들도 눈에 보인다. 저항을 해야 하는 구체적인 상대, 보이는 적이 있다.
신자유주의 지배체제는 전혀 다르게 짜여져 있다. 여기서는 체제를 유지하는 권력이 더이상 억압적이지 않고, 유혹적이다. 이 권력은 통제적인  지배에서 와는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더 이상 구체적인 상대가 없고, 자유를 억누르는 적, 저항해야 할 적이 없다.
신자유주의는 억압받는 노동자로부터,  자영업자 스스로를 만들어 낸다. 오늘날에는 누구나 스스로를 착취하는 노동자이다.  누구나 한 몸이지만 주인이면서 동시에 노예다. 계급 투쟁은 자기 스스로와의 내적 싸움으로 변화한다. 오늘날 실패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탓하고 부끄러워한다. 사회가 아닌 스스로를 문제로 여긴다.

굴복된 주체는 자신이 굴복당하고 있다는 점 조차 모르고 있다.

큰 힘을 들여 가며,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규칙과 금기로 옥죄는 통제적 권력은 비효과적이다. 본질적으로 효과가 더 큰 것은 사람들이 스스로 지배 관계에 종속하게끔 만드는 권력 기술이다. 이 권력 기술이 가진 특별한 효과는 이것이 금지와 박탈을 통해서가 아니라, 선호와 충족을 통해 작용한다는 점에 기인한다. 이 기술은 사람들을 복종시키는 대신에 의존적으로 만들려고 한다. 신자유주의가 가진 이 효과 논리는 감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에는 사람들은 인구 조사에 강렬히 반대하였다. 심지어 학생들도 거리로 몰려 나왔다.

상품으로서의 공산주의. 이것이 혁명의 종말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직업, 학력 또는 일터까지의 거리와 같은 필수적 기입 내용들은 거의 우스울 정도로 여겨진다. 국가를 지배층으로 세워 놓고,  국가가 시민들에게서 시민들 의지에 반하여 정보를 빼앗아 간다고 여기던 시대가 있었다. 이러한 시대는 오래 전에 지나갔다. 오늘날 우리는 스스로 자유로이 발가벗어 노출하고 있다. 저항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 느끼는 자유다. 인구 조사에 저항하던 시대에 비하여 우리는 좀처럼 감시에 저항하지 않는다. 이 역설적 상황을 미국의 개념 예술가 제니 홀처는 „진실주의(truism)“로 이렇게 표현한다: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지켜줘.“
‚앉히는 권력‘과 ‚유지하는 권력‘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체제를 유지하는 권력은 오늘날 스마트하고 친근한 형태를 받아 들이고 이를 통해 보이지 않게 되며 잡을 수 없게 된다. 굴복당하는 주체는 여기서 굴복당하고 있다는 점 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굴복당하는 주체는 스스로 자유롭다고 잘못 믿고 있다. 이 지배 기술은 매우 효과적인 방법으로 저항을 중화시킨다. 자유를 억누르고 공격하는 지배는 안정적이지 않다. 신자유주의 지배가 안정적이고 모든 저항에서 면역되어 있는 까닭은, 그것이 자유를 억누르는 대신 자유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빠르게 저항을 자극하지만,  자유를 이용하는 것은 그렇지 않다.
아시아 위기 이후 남한 사회는 마비 되었고 큰 충격을 받았다. 국제 통화기구가 와서 남한 국민들에게 돈을 꾸어 주었다. 그 댓가로 정부는 저항에 폭력적으로 맞서 가며 신자유주의 아젠다를 관철시켜야만 했다. 이 억압적인 권력이 자주 폭력을 쓰는 앉히는 권력이다. 하지만 앉히는 권력은, 신자유주의 지배에서 심지어 자유라고 자처하는 ‚체제를 유지하는 권력‘과는 다르다.  나오미 클라인은 남한 또는 그리스의 재정위기와 같은 재난 이후의 사회적 충격 상태가 사회를 폭력적인 방법으로써 근본적으로 다시 프로그램할 수 있는 기회라고 주장한다. 오늘날 남한에는 좀처럼 저항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우울증과 번 아웃(Burn Out)에 대한 큰 순응과  공감대가 만연되어 있다. 남한은 오늘날 세계적으로 자살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대신 자기 스스로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혁명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외부로의 공격심은 자기 공격심 앞에 힘을 잃고 있다.
오늘날 하나의 세계적 저항 혁명의 군중으로 일어설 수 있을 만한, 서로 협조하고, 얽혀 있는 다중(멀티튜드)은 없다. 오히려 홀로 고립되고 개별화된 자영업자라는 고독인(孤獨人,솔리튜드)이 현대의 생산 방식을 이루고 있다. 예전에는 기업들이 서로 경쟁 관계에 있었다. 기업 내부에는 반대로 공조가 가능했다. 오늘날에는 개개인이 서로 경쟁한다. 이는 기업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절대적인 경쟁은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키지만, 공조와 공공의식을 파괴한다. 지치고, 우울하고 개별화된 개인들로부터는 혁명 대중이 형성될 수 없다.
신자유주의를 마르크스적 이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 내부에는 그 유명한 일터로부터의 ‚소외(Entfremdung)‘ 조차도 일어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는 완전히 소진(Burn Out) 될 때까지 병적 쾌감으로 일에 파 묻힌다. 번아웃 증후군의 첫째 단계이 바로 병적 쾌감이다.  번 아웃과 혁명은 서로를 배제한다. 따라서 다중(멀티튜드)가 이 기생적인 제국을 무너뜨리고 공산주의 사회를 세울 것이라는 믿음은 오류이다.

나눔의 경제는 삶의 완전한 상업화로 이어진다.

오늘날 공산주의는 어떠한가? 어디서나 나눔(Sharing)과 공동체(Community)를 신봉하고 있다. 나눔 경제가 소유와 점유의 경제를 대신할 것이라고 한다. „나눔은 돌봄이다“, „나눔은 치유다“ 라는 말은  데이브 에거즈의 소설 „써클(The Circle)에서 써클인들이 내세우는 원칙이다. 써클 회사 본사로 가는 길에 덮여 있는 길바닥에는 „공동체를 찾아 나서라“ 또는 „참여하라“라는 문구들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원래는 ‘돌봄은 죽임이다‘ 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우리 모두를 택시 기사로 만드는 디지털 차량 공유 센터 „Wunder Car“도 이 공동체 아이디어를 가지고 홍보한다. 하지만 제레미 리프킨이 최근 저서 „ 한계비용 제로 사회“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나눔 경제가 자본주의의 종말을 유도하여, 세계적인 공동체적 지향의 사회, 다시말해 나눔이 가짐보다 더 가치 있는 그런 사회를 이끌어내리라고 믿는 것은 오류이다.  그 반대로 나눔 경제는 결국 우리 삶을 전체적으로 상업화하게 될 것이다.
제레미 리프킨이 칭송하는 소유로부터 „접근“에로의 전환은 우리를 자본주의로부터 해방시켜 주지 않는다. 돈이 없는 사람은 나눔에로 접근도 할 수 없다. 접근의 시대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돈이 없는 사람들은 배제되어 있는 „수용소“ 에 살고 있다. 모든 개인 주거공간을 호텔로 바꾸어 주는 커뮤니티 시장 에어비엔비(Airbnb)는 손님에 대한  환대 마저도 상업화시킨다. 공동체 또는 협조적 공공선의 이념이 공동체를 전부 자본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목적없이 베푸는  친절함은 더 이상 불가능해진다. 서로 평점을 주고 받는 사회에서는 친절함도 상업화된다. 더 낳은 평점을 받기 위해 친절해 진다. 협조적인 경제의 한복판에서도 자본주의의 딱딱한 논리가 팽배한다. 이 아름다운 „나눔“에서 역설적이게 아무도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내놓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공산주의를 상품으로 판매하는 시점에 완벽해진다.  상품으로서의 공산주의. 이것은 혁명이 맞이하는 종말이다.

* SZ 온라인 판 2014년 9월 2일, 황병철 교수 기고
* 옮김 fatamorgana 베를린리포트
추천8

댓글목록

제리님의 댓글

제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번에 독일어로 한 번 읽었을때 때때로 이해되지 않는 문장이 있었었는데, 지금 다시 한글로 번역한 글을 보니 제대로 이해가 되네요. 감사합니다.

다잘될거야님의 댓글

다잘될거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자본주의는 공산주의를 상품으로 판매하는 시점에 완벽해진다."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글쓴이 이름은 한병철 교수입니다. ^^

fatamorgana님의 댓글의 댓글

fatamorgana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지적 고맙습니다. 글쓰신 분 이름을 잘못 쓰고 말았네요. 죄송합니다. 아쉽게도 코멘트가 세 개가 넘어 글을 수정할 수가 없군요.
모두 넉넉한 한가위 보내고 계시길 빕니다.

anpigone님의 댓글

anpigon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신자유주의는 타인으로 부터 착취당하는게 아니라 나 자신 스스로를  착취하는 것이다. "
한 교수님이 몇년 전에 대충 이런 뜻의 말씀을 하신게 떠오릅니다.

치열하게 경쟁하여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스펙쌓고  헬스클럽 다니면서 건강과 더 빛나는 외모를 유지하고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 를 가져야 하고... (ㅋ 긍정적인 마인드... 좋아하네;; )  그런데도 모두가 피곤하다잖아요... 저런 모든걸 아예 지능과 실력부족 탓으로 애초감치 포기한 사람은 쪼금 덜 피곤한 것 같기도 한데....

뭐 그런데... 어쩌면 세상은 해변에 지어놓은 모래성같지 않나 싶을 때가 있어요.  파도에 휩쓸려 감쪽같이 사라져도 금새 또 다시 새로운게 지어진다는... 혹시나 그 순간에 견딜 수 없는 두려움이 있을까봐 그럴 뿐....

  • 추천 1

스크린님의 댓글

스크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truism은 '진실주의'라기 보다는 '진부한 말' 또는 '자명한 말' (Binsenweisheit)로 번역하는 것이 나을것 같습니다. 검은 바탕에 흰색으로 정말 진부한 말들을 써놓은 것이 이 사람 첫작품이고 그 제목이 truism 입니다.

  • 추천 1

fatamorgana님의 댓글의 댓글

fatamorgana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잘못을 일러 주셔서 고맙습니다. 안타깝게도 위의 본문을 수정할 수가 없다고 하네요. '상투어'라는 낱말이 적당할 듯 싶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gomdanji님의 댓글

gomdanji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fatamorgana 님, 번역수고 고맙습니다. 둘 다 읽으니 더 확실하네요. ㅎ

저는 매번 이 분 글을 읽을 때마다 이 세상의 주체가 체제로 귀결되는 것이 저에게는 문제라고 보입니다. 이 세상의 주체는 결국은 인간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체제는 그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인간들이 만들고 구축하기도 하고 언젠가는 인간들이 변화시키기 때문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 체제 하에 많은 인간들이 종속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번 글에서는 현 한국의 정치, 사회 병리학적인 현상을 '일반화'시켜 여기서도 신자유주의 현상을 주체화 시키고 이걸로 귀결점을 만들어 "자본주의는 공산주의를 상품으로 판매하는 시점에 완벽해진다." -한국에서 북한을 정치에 이용하는 방법처럼- 무슨 세상이 다 끝난 것처럼 그리고 '이렇게 된다'라고 하니 그건  '철학적인 관점'에서도 좀 그렇습니다. 철학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체제 하의 과정에서 이런 현상을 보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것은 현상이지 귀결점은 아니라고 봅니다. 함부로 일반화 시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떤 병리학적인 것이지 이를 바라보고 인간들이 바꾸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fatamorgana님의 댓글

fatamorgana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잘 지내시지요 gomdanji 님.

세상을 바라보고 설명하는 방법과 시각이야 많겠지요. 세상을 체제로 바라 본다고 할 때의 체제는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는 힘과 힘을 통한 지배 관계들을 설명하는 것일테구요.

응당 우리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사람이 주체여야 하지만, 당장 그 구성원들 대다수가 지배 관계 안에서 종속되어 있으면서, 종속되어 있음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런 세상을 '바꾸고 노력'할 수 있는 가능성 마저 없는 것이겠지요. 착취 당하고 있으면서도, 착취당하고 있음을 모르고, 스스로 무척 자유롭다 여기며, 그저 그렇게 가만히 살면 그 뿐이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개인은 삶과 세상을 변혁시킬 필요와 의지를 갖지 못합니다. 체제로 세상을 설명하는 것이 문제라기 보다는, 오히려 사람들이 자신들이 어떤 지배 관계에서 종속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닫고, 스스로 상품화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일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물론 체제만으로 세상 살이가 모두 설명되지 않습니다. 또 세상에는 또 우리 안에는 이웃을 위해 댓가 없이 자기를 모두 내어 놓고, '평점'에 대한 기대 따위가 없이도 이웃이 겪는 아픔을 함께 하고,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 아름다운 마음들이 많이 있다고 믿습니다.

번하드님의 댓글

번하드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fatamorgana님, 안녕하세요.
버녁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기사 하나 더 찾았는데 너무너무 길어서 버녁 부탁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http://www.zeit.de/zeit-wissen/2014/05/byung-chul-han-philosophie-neoliberalismus/komplettansicht

[자유투고] 자유·토론게시판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17159 베를린주민4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32 07:00
17158 kduoxn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22 04-22
17157 valfiros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072 04-15
17156 평화평등창의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48 04-13
17155 에얼트베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59 04-09
17154 아호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46 04-08
17153 평화평등창의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89 04-06
17152 일도아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33 04-01
17151 Nihongo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00 03-29
17150 Anerkennung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29 03-28
17149 Gentilly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75 03-27
17148 김밥zzz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43 03-23
17147 Vitter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86 03-22
17146 아트지은이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6 03-16
17145 GregLe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34 03-15
17144 평화평등창의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17 03-02
17143 평화평등창의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27 03-02
17142 bright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922 02-25
17141 willoo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221 02-20
17140 사부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116 02-16
게시물 검색
이용약관 | 운영진 | 주요게시판사용규칙 | 등업방법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 비밀번호분실/재발급 | 입금계좌/통보방법 | 관리자문의
독일 한글 미디어 베를린리포트 - 서로 나누고 돕는 유럽 코리안 온라인 커뮤니티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