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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끊고 두 손 모아 30초, 용서 한다 그러나 잋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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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2-05 20:12 조회1,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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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에서  (선경석)

-폴만 소장은  동방정책을 통해 독일은 한 국가라는 소속감이 생겼으며 인적, 물적 교류가 추상적인 형태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이루어 젖고 독일 통일 전까지 약 15년간 서로의 교류가 백만 배로 늘었기 때문에 동방정책은 통일에 있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했습니다.

    -브란트 수상은 세상에 잘못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따라서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 하기 전에 자기 자신의 잘못이나 오류를 돌아 볼 줄 알아야 한다.

 독일 민족, 우리 자신을 위해 저는 온 힘을 다해 두려워 하지 않고 나아갈 것입니다. 라고 말하고 동구권 국가들에게 차례로 손을 내 밀었습니다.

 -1970년 직접 나서서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유럽 전역에서 현재의 국경선을 존중하기로 합의”하고 서독-소련 간 불가침 조약을 체결합니다.

-1970년12월7일 폴란드를 방문 서독이 폴란드의 서부 국경을 인정하고 구 영토를 사실상 포기한 서독-폴란드 조약을 체결합니다. 브란트 수상은 조약 당시 “나는 이 어려운 여정이 평화로운 미래를 위하여 아주 큰 의미가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라고 합니다.

  그 날 브란트 수상은 바르샤바 광장을 찾습니다. 그곳은 2차 대전 당시 희생된 유대인 40만 명을 추모한 곳으로 헌화를 마친 후 갑자기 무릎을 끊고 30초간 양손을 맞잡고 머리 숙였습니다. 무릎 끊었을 때 “인간이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을 했을 뿐이다”고 했습니다.(오데르-나이세 국경선을 폴란드 국경선으로 인정함)
      이후 세계 언론은 “기념비 앞에 두 손을 모아 조의를 표한 이날 장면은 전후의 화해를 뜻하는 상징이 되었다히틀러가 장악한 제3제국 시절 박해 받은 그였기에 그날 그 사죄는 진정성을 인정 받았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어떤 폴란드인이나 유대인이 그에게 사죄하라고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무릎 끊고 사죄한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동방정책에 대해 더 큰 신뢰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브란트 수상은 나중에 무릎 끊은 것은 즉흥적이었다고 말 했습니다. 하지만 슈피겔의 여론 조사에 독일인들 과반수는 이 모습은 과장된 것으로 조사됐다고 합니다. 또 이웃 국가에게 굴욕적인 행동을 보이면서 작아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지를 받았는데 특히 서독의 젊은 세대는 나치 시대와 관련한 많은 비판적인 질문을 하며 민주적이고 열린 독일을 만들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브란트수상이 무릎 끊은 그 사건은 독일 사람들이 자기 비판적인 인식을 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1973년 브란트수상은 이스라엘을 방문 합니다.  그리고 나치가 저지른 만행을 사죄 합니다.

  골다 메이어 전 이스라엘 수상은 “당신의 진심을 받아 들이겠습니다.  용서하겠습니다. 그러나 잊지는 않겠습니다”라는 말을 합니다.
(골다 메이어 여성 수상.1898.5.3. 러시아 키에프 출생. 이스라엘 건국 정치인 중 한 사람. 노동부장관.외무부장관 역임)

                        -1971년 브란트 수상에게 노벨 평화상이 수여 됩니다.

-고르바초프 회고록을 인용하자면  “고르비 생각에 빌리 브란트 동방정책 여정을 보면 독일을 통일 시켜줘도 되겠다. 독일이 통일 되어도 전에 와 같이 독일이 전쟁을 일으키거나 문제를 일의 키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으며 바로 이런 측면 때문에 동방 정책이 독일 통일 정책에 중요한 역할, 주추돌이 됐다고 볼 수 있다.고 기록되었다. 합니다.

 -이 모든 것은 그쪽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여기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인정 하는 데서 출발한 동방정책은 공존과 화해를 가능하게 했고. 그리고 조국이 저지른 과거에 대한 지도자의 진정한 참회, 냉전으로 얼어 붙은 시대에  움추린 표정을 훗날 이루어질 독일 통일 믿거름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남에서 진정한 지도자로 되기 위해서는 유신과 군사 독재, 지난 정권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정리해야 한다.)   

      -우리의 이야기는 맨 앞에서 언급했던 “베너 테제”에서 이어져 내려온 독일 통일의 바탕이,      지난 2014년 3월 27일 박근혜(대통령)에게 메르켈 총리는 코레아 반도 통일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일은  지난 70여년간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을 열린 마음으로 대하고,  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이라고 조언합니다.

(그 때 중요한 이 조언을 이남 언론들은  단 한마디도 언급 하지 않았다)

  박근혜(대통령)은 “독일은 코레아반도 통일 모델”이라며 “통일 독일을 보면서 통일코레아 비전을 세우겠다”화답합니다.

  (앙겔라 도르테어 메르켈 Angela Dorther Merkel 1954.7.17 함브르크 출생 몇 주 후 동독 이주.1978년 디풀롬.1986년 박사.1977년 물리학자 울리히 메르켈과 결혼 1982년이혼.1998년 지우어와 재혼. 전 남편성 그대로사용.2005 .11.22.독일 제8대총리<프로센의 독일 제국 이후로는 제34대>로 시작 현재.)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주문한 동독 출신인 메르켈 총리의 충고는 이 지구상에서 그 누구 보다 지난 삶의 경험에서 제일 적절한 사람으로서 최적의 충고 이며 사태의 정곡입니다.  이남의 통일 정책에서 가장 결여된 것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1-4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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