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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동화를 폐기한 잔혹현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XX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9건 조회 2,579회 작성일 15-05-09 02:23

본문

페북에 끼적인 글이라 말투가 좀 건방진데, 그냥 옮깁니다.

관련기사 http://sbsfune.sbs.co.kr/news/news_content.jsp?article_id=E10006607416


잔혹동시. 어른의 눈에는 이 글이 호러를 넘어 고어의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알아야 한다. 아이들은 그저 자신을 옭죄는 끔찍함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일 뿐이란 걸.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이 글을 읽히게 하고 싶지 않다"가 아니라, "끔찍한 세상에서 아이를 꺼내주어야 한다:"라고 느껴야만 한다. 단순하게 학원을 보낸다.안 보낸다의 문제를 넘어선 근본적인 것에 대한 고민과 행동이 필요하다. 그 과정은 지난하여 우리 아이들이 기성세대가 되어서야 해결 될지도 모르지만.

잔혹동시는 전량 회수-폐기 처분이 결정 됐다. 사회는 "아이가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해결하려는 노력 없이 "글을 읽는 어린이에게 끼칠 부정적인 영향"만 바라 본 결과다. 사회가 아이를 잔혹하게 몰아부쳐 놓곤, 아이들에겐 잔혹한 사회에 대한 솔직한 표현을 금하는 꼴. 중간고사 기말고사 기간엔 아이들이 고층에서 뚝뚝 떨어지고, 아파트 집값을 걱정하는 어른들은 구급차에 싸이렌을 울리지 않도록 요구하는 이 사회가 과연 "아이의 잔혹동시" 보다 덜 끔찍한 것일까?
추천5

댓글목록

Bersagliere님의 댓글

Bersaglier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 글에 공감합니다.

아이가 쓴 동시보다도 그 시를 재단하고 마녀사냥하는 댓글러들의 편견이 오히려 더더욱 끔찍하고 무서웠습니다.  혐오스럽기도 했고요.

그 시집을 제대로 사서 읽어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도 궁금하더군요.
자극적인 기사에 자극적인 여론만 조성하여 어린시인 한명을 무참히 짓밟는 현실이 끔찍했습니다.

XX님의 댓글

XX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 아이의 시 중에서 '솔로 강아지'와 '내가 시를 잘 쓰는 이유'는 정말 섬짓 할 정도로 좋네요.

솔로 강아지

우리 강아지는 솔로다

약혼 신청을 해 온 수캐들은 많은데
엄마가 허락을 안한다

솔로의 슬픔을 모르는 여자
인형을 사랑하게 되어버린 우리 강아지

할아버지는 침이 묻은 인형을 버리려한다
정든다는 것을 모른다

강아지가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있다
외로움이 납작하다



내가 시를 잘 쓰는 이유

상처딱지가 떨어진 자리
피가 맺힌다

붉은 색을 보니 먹고 싶다
살짝 혀를 댄다

상큼한 쇠맛
이래서 모기가 좋아하나?

나는 모기도 아닌데
순간 왜 피를 먹었을까

몸속에 숨어 사는 피의 정체를
알아보려면
상처딱지를 뜯고 피를 맛보아야 한다

모기처럼 열심히 피를 찾아야 한다
모든 시에서는 피 냄새가 난다
[출처] http://blog.naver.com/whiteismy/220352266893

  • 추천 3

Bersagliere님의 댓글의 댓글

Bersaglier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링크를 클릭하여 보고 왔습니다.  정말 뜨거운 댓글전쟁이 펼쳐지더군요.

저도 한 권 구매하고싶었는데, 안타깝게도 판매중단되었네요.

또리님의 댓글

또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월 가정의 달을 맞아 사회가 재능있는 한 아이를 매장해버리네요. 아이에게도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있을진대. 옥에 티라면 개인적으론 '학원가기 싫은 날'에는 삽화를 넣지 말았어야 문학성이 온전히 빛을 발했을 것 같지만요. (만일 아이가 그린 삽화라면 모르지만, 그냥 편집 과정에서 어른이 끼워 넣은 것 같아서요)
취향에 안 맞으면 그만일뿐, 아이의 문학 작품에 패륜 어쩌고를 갖다 붙이는 어른들의 잔인함이 돋보입니다.

  • 추천 1

솔져님의 댓글

솔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제 주관으로는 좋은 시 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어떤 문학작품 혹은 글에 선정적인 단어가 가득하면 대체로 좋은 평을 받지 못합니다만,
왜 그것을 아이가 썼다는 이유로 아이의 눈으로 이 잔혹한 사회를 솔직하게 묘사했다는
식의 호평을 받는지 몹시 아이러니한 심정입니다.
별로 재능이 있어 보이지도 않고, 글도 지 혼자 쓴 게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지만 출판사가 서둘러 회수해서 파기하기로 한 것이나,
아이의 엄마가 강력하게 출판을 원하는 것에서 의심이 많이 듭니다.

처음엔 제 주관과는 별도로 언론 출판의 자유가 훼손 받는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기사를 읽어보니 상업적 계약을 맺은 출판사가 회수해서 폐기하기로 결정했더군요.
아이와 아이의 부모가 저작권을 양도하지 않은 이상 다시 출판하면 되겠네요.
물론 같은 초등학생들이 읽어도 되는 책은 아니라는 판정을 받을 가능성이 높지만
말입니다.

아이들에게 사회의 진실에 대해 가르치고 이해시키고 대응책을 가르치는 것은
사회의 몫이잖습니까, 태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이들에게 아무런 준비과정 없이
모든걸 여과 없이 보여주면서 그것을 진실된 교육이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 아이는 학원 갈 나이도 아니고, 학원에 보내지도 않을 것이고, 학원에 가야 하는 나라에
살지도 않습니다만, 엄마가 애를 학원에 보내면서 그 심정 역시 만만치않게
나쁜 기분이 드는 엄마들도 많이 있다고 보는데, 그 엄마를 저렇게까지 묘사하는 것에
대해 경악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저 아이가 자신의 시를 통해 생각이나 느낌을 문학적으로 표현 할 정도의
지성을 가지고 있는지 그게 가장 궁금하군요.
그 정도의 지성을 가지고 있는 아이가 가족에 대한 그만큼의 작은 연민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말입니다.

  • 추천 3

또리님의 댓글의 댓글

또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몇 편의 시를 더 읽고 나니 저는 이 여자아이가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이 세 번째 책이었고, 자신도 시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과소평가하기 쉬운 아이들의 예술 세계는 사실 성인 예술 평론과 비슷한 잣대를 대도 될 만큼 풍부합니다. 시와 그림 장르는 특히 성인 작품보다 돋보이기 쉽습니다. 테크닉보다 상상력이 중요하기 때문에요. 그 나이 때 문학소녀들은 창작에 대한 욕심도 크고,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모방 발전시킵니다. 이 친구는 공포, 호러 장르를 좋아합니다. 수백 년 내려오는 전래동화, 세계 공통으로 잔혹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우리 모두 어릴 때 듣고 자란 이야기들요. 절단, 유혈이 낭자하죠.. 전 이런 게 제 정서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아무튼, 엄마 또한 시인인데 학원 가는 날을 읽고는 충격을 받았지만, 아이를 이해하게 돼 그날 당장 다니던 영어 학원을 그만두게 했답니다. 엄마와 아이가 이 시를 포함하길 원했다는 건, 시를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지로 보입니다. 실제로 아이의 시가 엄마의 행동을 끌어낸 셈이니까요. 이 가족에겐 큰 의미를 지닌 시입니다.
마지막에 아이가 가족에 대한 작은 연민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셨지만, 아이들은 부모를 사랑해야 할 의무도, 연민을 가져야 할 의무도 없습니다. 효도할 의무는 더더욱 없지요. 아이 입장에서는 대부분 생존을 위해 엄마와 강한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것뿐이지요.

제가 걱정스러운 건, 다혈질 대한민국의 특이한 인터넷 이지메 문화고 악플의 파급효과 입니다. 최진실 자살로 세계 언론이 이를 조명하기도 했죠. 아이는 정치인이나 공인도 아니라 어느 정도 본인이 감수해야 할 의무도 없는 데 말이죠..

  • 추천 6

솔져님의 댓글의 댓글

솔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작은 연민조차도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았으니 착각을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가족을 사랑해야 할 의무도, 연민을 가져야 할 의무도 없다는 말씀은
전혀 공감이 되지 않습니다만, 부모가 각자의 자녀들을 자신이 추구하는
방식으로 교육하고자 하는 방향이 사회가 용인하는 최소한의 보편적인 범주의 
것이라면 누구도 간섭하지 않으니 그건 또리님이 알아서 하시고 남에게도
같은 시각으로 대해주면 되는 것입니다.

아마 이 시를 아이들을 대상으로 성인이 썼다고 한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달랐을 겁니다.
표현의 자유에도 허용하는 수위가 있습니다.
아이라고 해서 아무 표현이나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지요.
아이들의 자유를 속박해서는 안되겠습니다만,
그 자유라는 것에 제한이 없는 것이라면 세상은 그야말로 잔혹동화의 현실판이 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아이에게도 그만큼의 사회적 의무는 있는 것입니다.
정치인이나 공인이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 추천 2

또리님의 댓글의 댓글

또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 자유라는 것에 제한이 없는 것이라면 세상은 그야말로 잔혹동화의 현실판이 될 겁니다."
이 말씀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 동시 논쟁의 쟁점은 폭풍 악플로 인해 결국 시집이 모두 회수, 폐기처분 되는 것이고 그것이 저는 개인적으로 안타깝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피땀어린 창작물이 폐기되야하는 것을 겪는 아이에 왠지 감정이입이 되서입니다.

실제로 댓글로 특정인 인신공격과 명예훼손을 한 사람은 처벌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문학은 다릅니다. 인간에게 예술은 필연이고, 예술은 거울이자 배출입니다. 문학적 표현의 자유에 가하는 제한은 훨씬 관대해야만 합니다. 어차피 배출은 제한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떻게든 흘러나오기 때문이죠. 

사실 저는 공포, 호러 장르를 싫어합니다. 비위는 강한 사람이지만 제 취향이 아니기에 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이 알고 있고, 그 취향을 존중합니다. 잔혹시와 잔혹영화를 본다고 사람이 실제로 잔혹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죠. 영유아기때는 현실과 허구세계를 헷갈리기 쉽지만, 취학연령이 되면 대부분 구분합니다. 어른들의 과소평가로 과잉보호가 일어나죠.

아이들이 문학이나 영상을 접해 정서에 영향을 받는 건 어차피 제한적입니다. 부모와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으로 인격 형성이 되죠. 그래서 부부 금슬이 좋은 게 최고의 육아법이라고 말합니다. 자라면서 가장 많이 접하는 인간관계를 보며, 부모간에 그리고 다른 가족 구성원과의 상호작용으로 체득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촉수는 예민해서 부모의 인격을 그대로 체화합니다. 말로 훈육하는 건 한계가 있지요.

이 시를 쓴 아이의 부모가 궁금해져 찾아보니, 엄마는 아이의 취향을 존중해주는 시인이고 아빠는 가장 하기 힘든 변호라고 알려진, 의료소송에서 환자 쪽 변호를 맡는 변호사더군요. 부모 직업이 괜찮으니 아이도 괜찮다는 말이 아니라, 과연 어떤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는 지 궁금해져서 뒤져본 것이고, 조금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이 가족을 실제 만나본 적도 없는 저만의 피상적인 생각일 수 있죠. 아무튼, 아이는 자기 주장이 강한 소녀같더군요.

요 아래는 검색 중에 찾은 아이의 또 다른 귀여운 시라 공유해봅니다.

........................................................................................
착한 오빠

오빠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내 친구가 오빠의 머리카락을 한참 잡아당겼기 때문에 태권도 사범단이면서도 때리는 대신 말없이 참는 오빠
어떤 아이가 날 놀렸을 때 오빠는 그러지 말라고 말려 주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친구 앞이었기 때문에
남매란 무엇일까 가족이란 무엇일까 피가 섞인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플 때 같이 아프다는 것일까

  • 추천 2

솔져님의 댓글의 댓글

솔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를 쓴 아이가 범법자 혹은 범죄를 유발시킬 가능성을 지닌
창작을 했다는 뜻이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

예술과 문학을 떠나서 아동에게도 최소한의 법적제한은 두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또리님의 동의여부와 관계없이 말입니다.
자유지수가 가장 높은 상위국가들에서도 만 10세 이상인 아동의 경우
법에 위반되는 행위를 하면 보호처분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아이들을 구속하는 차원이 아닌 사회의 구성원으로
정말 아주 아주 작은 최소한의 규범을 지키도록 하는 차원입니다.

그리고 그 자유를 성숙한 인격과 지성을 가지고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부모와 학교를 비롯한 인간 사회가 아이를 교육하는 것입니다.

출판사가 시집을 회수하고 폐기하기로 결정한 것이 폭풍악플
때문이 아닙니다. 사회적논란이 크게 일어난 것을
이유로 출판사가 결정했고, 그 아이의 부모 역시 많은 논란들이 확대 및
재생산 되는 것을 원치 않기에 전량폐기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입니다.

  • 추천 1

또리님의 댓글의 댓글

또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는 건 아니지만, 동시 논란과 관련해서 법적제한, 법 위반, 보호처분 등등을 함께 언급하는 것 자체가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공포와 호러 장르 문법을 고려하고 시를 접하면 문제가 될 게 없습니다.
물론 제 주관적 감상을 남이 받아들일 필요도 없지만요.

  • 추천 1

솔져님의 댓글의 댓글

솔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이에게도 무제한적인 자유는 허용되지 않는게
보편적인 인간사회라는 것을 부연설명 한 것입니다.
법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도 그것 때문입니다.

Bersagliere님의 댓글의 댓글

Bersaglier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 아이와 가정환경을 처음부터 지켜보지 않은 이상 그 누구도 속단할 순 없죠.

아이들은 언제나 착하고 밝고 예뻐야 한다는건 어른들의 고정관념중 하나가 아닐까요?

이미 이러한 논쟁이 벌어진것 자체가 어쩌면 이미 성공한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추천 1

yxcvbnm님의 댓글의 댓글

yxcvbnm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는 제아이가 맑고, 바르고,밝게자라길 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물론 결과는 20년뒤쯤 볼 수있겠죠.
제아이가 저 동시를 썼다고 가정하면
저는 내아이가 내가 주축으로 만들어진 가정이라는 조그마한 사회에서 나를 향한 생각이 살인이 느껴질 정도라면 시를 상업주의로 출판하기전에 먼저 나 스스로 반성하고 나의 대한 미움과 가정에 대한 불신을 아이의 생각으로 부터 없애려고 노력 할 것 같습니다.
아이는 사회의 병폐나 세태보다는 24시간 같이하고있는 가족의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아이가 폐륜아여서가 아니고 가족구성원이 그동안 아이와의 대화가 부족했거나 아이의 문제점을 모르고 지나친건 아닐까요?저는 그 가정에 대해서 모르지만 제아이라면 제가 깊이 반성하고 아직 꿈과 희망이 많은 아이들에게 다른것을 보여주려 노력할 것 같아요

  • 추천 2

XX님의 댓글의 댓글

XX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는 솔직하게 썼다고 했지 호평을 한 것은 다른 시고요. 지금 한국 사회는 아이의 시에 호평 보다는 표현의 방식을 두고 논쟁을 펴고 있죠.

문학적 가치에 대한 평가야 주관적이니 논쟁 삼을 생각은 없고요. 요즘 아이들은 사춘기(정서)를 빨리 맞이하기 때문에 이미 초등학생 때 반항적 표현을 많이 합니다. 자신의 자유를 얽매는 가족에게 욕을 하는게 그리 이상할 것도 없는 게 사춘기 아닌가요? 게다가 한국의 참혹한 사회는 아이를 감옥의 수인으로 키우는 게 보통이잖습니까?

정상적인 사회라면, 10대의 자살율 1위가 자살이라는 점, 잔혹한 학업과 경쟁이 그 자살율을 만들었단 사실을 떠올려 반성하고 사회적 토론이 견인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선 어느 누구도 그러한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저 저 동시를 출판하는 게 어쩌니, 표현의 자유가 어쩌니 하는 말 뿐이죠.

  • 추천 4

솔져님의 댓글의 댓글

솔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출판하고 말고는 출판사와 저작권자가 합의해서 결정된 것이고, 우리 사회가
그런 독단을 내린 것은 아닙니다. 보기 싫으면 안보면 되고 비평이야
늘 있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한국내에서도 이 문제를 가지고 여러곳에서 이슈가 되고 있고
토론과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정치권의 부정부패에서 비롯된 많은 사회적 문제점들을 안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에 생각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당장 맑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능력이 없는 많은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이 이 탁하고 추한 세상에 태어나 자라면서도 맑고 올곧은 심성을
가지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생각과 능력을 가지는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고, 그런 아이들이 커서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살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규항씨도 아이들이 있거나 혹은 사회적책임의식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나름데로의 사항들을 실천하거나 계획하고 있겠지요.

마치 자기는 잘하고 있으니까 해당사항이 없다는 것처럼 쏙 빠지는 듯한
발언은 하지 않는 사람은 아닐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하도 그런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노파심이 듭니다.

  • 추천 2

XX님의 댓글의 댓글

XX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김규항씨는 [고래가 그랬어]라는 어린이 잡지책 만들고 있고요. 아이들을 삶의 주인으로 존중해 주면서, 입시경쟁에 매몰된 공교육을 거부하는 것에 동의하여 첫째는 고등학생 때 중퇴를 둘째는 중학교에서 중퇴,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꾸리도록 도와주고 있다 합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의 글엔 대부분 동의하고 들리는 삶의 태도에 대해선 존중합니다.

  • 추천 1

XX님의 댓글

XX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이들이 맑고 아름다운 말을 하길 바란다면, 맑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주면 된다.

김규항 페이스북에 오른 글 퍼왔습니다.

  • 추천 2

Bersagliere님의 댓글

Bersaglier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문득 든 생각이지만, 시와 함께있는 삽화가 기폭제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그냥 글만 덩그러니 있었더라면 어떠했을까요?

XX님의 댓글의 댓글

XX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도 그 생각 했어요. 그리고 그와 관련된 칼럼도 있더군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79&aid=0002708138&viewType=pc

  • 추천 1

가아닌양님의 댓글

가아닌양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몇 가지 오고가는 댓글들에 대한 개인적 의견입니다.

1.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출판사의 실책입니다. 동시는 특수한 장르시에 가깝습니다. 아이가 썼다고 해서 동시가 되는 것도 아니고, 아이가 썼다고 해서 다른 아이들을 독자층으로 잡아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제 생각에는 출판사는 돈을 벌고 싶었고, 당연히 사람들에게 이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해버린 듯 합니다.

2. 어떤 사람이 시를 썼다고 했을 때, 그것을 시쓴이의 심리, 혹은 사회적 문제와 직접 연결시키는 것은 시를 쓴다는 것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가깝습니다. 어떤 시인이 많은 양의 시를 축척하고, 그것이 그의 고유한 언어적 특성으로 여겨진다면, 그런 것에 대해 심층적으로 탐구할 수 있겠지만, 지금 이런 몇 개 시를 가지고 그런 것들을 논하는 것 자체가 특별한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이의 시를 보고 아이를 학원에 다니지 않게 했다는 어머니의 반응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이야기를 해볼 수 있습니다. 아이가 학원에 갈지 안갈지는 시를 보고 판단할 일이 아니고, 아이와 대화를 해서 결정할 일입니다. 시는 시를 쓴 사람 그 자체가 아닙니다. 따라서 아이의 시를 사회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는 어떤 외침으로 생각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아이와 세계 혹은 시와 시에 대한 반응의 관계에 있어 적절한 대응은 아닙니다. 시는 시이고 아이는 아이입니다.

2.1 그런 점에서 이 아이가 쓴 시들의 언어적 특징들은 불균질합니다. 대체로 시를 쓰는 사람들은 초창기 시어들을 조립 할 때 몇 가지 스타일들을 모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아이는 생각보다 다양한 층위의 언어들을 사용한다는 느낌은 있습니다. 여러가지를 흡수하고 있다는 느낌. 따라서 이 시를 보고 이 아이가 어쩌고저쩌고, 아이를 옹호하는 쪽이나, 아이를 비방하는 쪽이나 뭔가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3. 아이의 시적 예술세계가 성인들보다 풍부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반론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끔 예술 작품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상상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상상력은 없는 것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들을 특수하게 조립하는 능력에 가깝습니다. 그런 점에서 가지고 있는 재료들이 어느 정도는 축척된 상태에서, 그리고 그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립해 본 경험이 있는 상태에서 좋은 시나 예술 작품이 나올 가능성이 발생합니다. 물론 그런 것들에 연령제한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어린아이가 예술적으로 뛰어난 것도 당연히 아닙니다.-시에 국한시켜서 이야기하는 제 생각입니다. 미술은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가끔 어른들이 아이들의 작품에 대해서 쓸데 없이 오바한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별 창의력이 없습니다. 사고의 고착화는 생각보다 빨리 시작됩니다.

4. 시에 대한 개인적 소감: 제가 읽어본 것 중에는 "학원가기 싫은 날"과 "내가 시를 잘 쓰는 이유"는 시어들이 특별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학원가기 싫은 날"의 언어들이 가지고 있는 끔찍한 느낌은 문제가 아닌데, 제목이랑 마지막 줄이, 이 것이 시의 느낌이 나지 않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내가 시를 잘 쓰는 이유"는 흔한 느낌, 특히 마지막 줄은 너무 진부하고요. "착한 오빠"는 시라고 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초등학생이 쓴 시를 생각하면 보통 생각하는 그런 시인 것 같습니다. "솔로 강아지"와 "도깨비"는 확실히 언어들을 잘 쓴 시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 추천 2

XX님의 댓글의 댓글

XX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 공감합니다.

2. 문학에 대해 무지해서인지 2번에 대해서는 전혀 공감이 가질 않습니다. 저는 시를 써본 적은 없습니다. 다만 수필 정도는 끼적여 봤는데요, 제게 있어서 글이란 자신을 몽땅 드러내는 사건이더군요. 저를 감싼 사회체계 환경이 녹아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요. 시는 이러한 것과 무관한 것일까요?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만, 열 살도 안된 아이들이 학원을 다니지 않으면 스스로 소외된 느낌을 받습니다. 학원 가야 아이들이 있고, 아이들이 하는 학습을 하지 않으면 '가지지 못한'불안감에 휩싸이거든요. 그렇게 아이들은 유치원 들어가기 전부터 영어와 중국어를 기본으로 미술이나 음악을 배우기 시작하고, 초등학교 들어가면 학교가 끝나자마자 학원을 다니며 저녁밥도 대충 때웁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쯤 가면 학습을 거부하는 아이들이 수없이 늘어나고, 중고등학교 올라가면 시험기간에 아이들이 고층건물에서 뚝뚝 떨어지죠. '학원 가기 싫은 날'은 사실 수 많은 아이들이 공감하는 게 아니라, 이미 아이들이 속으로 수 없이 외쳤던 욕찌거리들이었습니다. 부모들이 그럽니다. 마루에서 선잠 들었는데 초딩 자식이 지나가며 엄마 보고 쌍욕을 지꺼리더라구요. 작은 소리로. 한국이 그래요. 저는 이런 시가 자라나는 삶의 터전인 사회환경에서 동떨어져 나온 거라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3. 저는 천재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낭만주의적 환상이라고 봐요. 예술이란 삶을 통해 경험하고 느끼고 배우고 깨달은 것을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지난한 과정에서 차곡이 쌓이는 거라고 보구요. 미술을 전공한 입장에서 보자면, 다만 아이들은 '잘 그려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로와 거침없이 휘갈기는 매력을 보입니다. (한국의 미술학습은 그와 거리가 멀기도 하지만요) 성인 작가들은 그러한 게 무척 부럽죠. 우리는 배운 것에 얽매여 소심하게 작업에 임하니까요.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어 술에 취해 그리기도 하구요.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아이들의 창의력이란, 아직 많은 것을 알지 못한 이유로 고정관념(혹은 지식)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 넣는 것도 그렇고요.

가아닌양님의 댓글의 댓글

가아닌양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 이 시를 쓴 아이는 그런 점에서 보통 사람보다는 글 쓰는 것을 훨씬 다양하게 즐기는 느낌입니다. 작가가 시 혹은 예술작품을 통해서 자기를 드러낸다고 했을 때, 그건 매우 복잡한 양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이가 글을 쓸 때 집중하는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그렇게 단순하게 결론을 도출하기는 어렵습니다. 시는 일기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학원가기 싫은 날"은 일기의 느낌이 강하게 들긴 합니다. 그래도 그건 아이와 부모의 대화를 통해서 무엇이 문제인지가 결정될 일이지, 시를 읽고 결정될 일은 아닙니다.
아 참, 그리고 시를 쓸 때, 또는 글을 쓸 때 언어를 강하게 쓰고 싶은 유혹에 빠지곤 합니다. 일기를 쓸 때도 비슷합니다.

3. 아이의 예술세계에 대해서 환상을 갖는 것이 오히려 천재에 대한 환상에 가깝지 않을까요. 천재, 자유로움 뭐 이런거여. 예술가가 갖고 있는 삶의 스타일 창조력의 원동력 그리고 자신의 것을 만들어내는 노력의 방식들, 이런 것들은 매우 다양하겠지요. 그리고 그런 것들이 생기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는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XX님의 댓글의 댓글

XX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 님께서는 아이가 사회환경에서 완전 동떨어진 일순간의 감정?으로 시를 썼다는 이야기로 저는 파악하겠습니다. 저는 사회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게 우리네 사람이고, 특히 대한민국의 사교육 환경을 봤을 때 어른들은 아이의 저러한 표현 앞에서 죄책감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3. 제가 아이의 예술세계에 대해 환상을 가졌다고 생각치는 않습니다.

또리님의 댓글의 댓글

또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는 출판사의 상업주의를 문제 삼는 것은 예술을 대하는 지나친 결벽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가와 후원인의 관계와 역할을 다소 순진하게 보는 것 같고요. 돈 때문에 탄생한 불후의 명작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많은 훌륭한 작품이 당시엔 선정주의, 상업주의라는 비난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쿠르베부터 헨리 밀러까지.. 어차피 더는 나빠질 수도 없는 우리나라 문학출판시장에 대한 상업주의 질타는 좀 강경한 것 아닐까요?

2. 에서 시와 시 쓴 이의 심리, 사회적 문제를 직접 연결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건 맞는 말씀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시는 시이고 아이는 아이다, 이 말에 동감하면서도 어떤 작품이 만든 이의 손을 떠나는 순간, 그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고 갑론을박하는 것은 수용자의 몫이므로 말씀하신 "이것은 적절한 대응이 아니다, 시와 사회문제를 연관시키지 말라" 야말로 적절하지 않습니다. 어떤 시를 두고, 시를 쓰게 된 배경과 시쓴이의 심리, 사회적 의미를 이야기해 보는 것 또한 시를 읽고 토론해보는 사람의 자유겠지요. 순수냐, 참여냐도 결국 수용자마다 다를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점에서 작품의 수용자인 엄마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행동을 취했다면 (학원을 그만두게 함) 그것은 작품이 미친 어쩔 수 없는 영향입니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작품을 만든 사람과는 별개로 벌어질 수 있는 일입니다. 바그너 음악을 수용자 나치가 이용한 것 또한 바그너와 별개라고 보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2.1 저도 위에 썼듯이 문학소녀가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를 모방, 발전시켜가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학원가기 싫은 날도 특정 장르의 문법을 시험해본 것이라 여겼고요. 성인도 그렇지만 그 나이 때 아이에게서 다양한 수준의 작품이 나온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직관적으로 쓴 시, 모방한 시, 연마하고 오랜 시간 심혈을 기울여 쓴 시가 섞여 있겠죠. 기성작가의 시집 한 권을 들고도 이런 분류는 가능합니다.

3. 저는 위에 이렇게 적었군요.
"우리가 과소평가하기 쉬운 아이들의 예술 세계는 사실 성인 예술 평론과 비슷한 잣대를 대도 될 만큼 풍부합니다. 시와 그림 장르는 특히 성인 작품보다 돋보이기 쉽습니다. 테크닉보다 상상력이 중요하기 때문에요."
실제 비평이나 예술에서 상상력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저는 모릅니다. 제가 생각하는 상상력이란 실제 경험하지 않은 것을 그려내는 힘이기도 하고 (어른보다 아이가 경험이 적기에 더욱 놀라운) 그런 점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의력과도 관련있습니다. XX 님이 말씀하셨듯이 아이들은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기에 신선한 발상으로 어른을 즐겁게 합니다. 놀래키기도 하고 섬뜩하게도 만들지요. 이건 그냥 상투적인 표현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사람은 누구나 공감할 겁니다. 예술의 기능이 정서적 쾌락이라면 신선한 발상으로 즐거움을 주는 아이와 "동심을 지닌 어른"은 예술가와 매우 가깝습니다. 우리가 자주 듣는 발상의 전환, 동심으로 돌아가라, 이런 말들이 결국 아동기를 동경하기 때문입니다. "엄마의 선물 말일기"라는 책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목욕을 하던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얘들은 왜 웃으면서 떨어져?"
엄마 왈,
"뭐? 그게 무슨 말이야?"
물이 왜 수도꼭지에서 웃으면서 떨어지냐는 마치 시같은 아이의 말입니다. 지식이 없어서 나올 수 있는 말이기도하죠. 어른들이 추구하는 시적 감수성이 역설적으로 이런 동심입니다.

3.번에서 하신 주장은 뇌의 이상과 천재적 예술성이 관련있다는 연구결과와도 상반되겠지요. 어느정도 축적된 상태에서 좋은 예술이 나올 가능성이야 당연히 높지만, 예외 또한 많겠죠. 그래서 보통 인문학과는 달리 예술이나 비평은 주관적이란 걸 전제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가아닌양 님 글이 주로 제 글에 대한 반박같아 저도 길게 써봤습니다.
저 위 댓글에도 나왔듯이 이런 시의 출판, 폐기가 문제가 된 덕분에 시에 대한 토론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게 의미있긴 하네요. 상처받았을 아이는 안쓰럽지만요.

  • 추천 1

가아닌양님의 댓글의 댓글

가아닌양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일단 여러 댓글들을 읽고 드는 생각을 썼습니다^^. 물론 대다수의 댓글들이 겨냥되기는 했습니다만, 한 글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에는 제 글에는 몇 가지가 섞여있어서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것들이야 댓글들의 오고감을 통해 조금은 해소될 수 있겠지요. 댓글의 재미~

1. 저는 출판사의 상업주의를 비판한 것이 아니고요. 저 출판사가 자신들이 하는 일을 잘 이해못했기 때문에 실책을 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출판사는 장사하는 곳이니까요. 제가 저 출판사를 잘 모르지만, 그래도 아동문학을 다루는 곳이라면 아동문학에 대한 고민과 이해, 논쟁이 필요하고 그런 것들이 출판사를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게 하겠지요.

2. 작품이 사회적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시는 원래 그런 방식의 반향을 일으킬 만큼 어떤 것을 직접적으로 지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작품에 대한 반응에 대한 비판(반응)도 필요하고요. 많은 댓글들이 그런 요소를 가지고 있지요. 이 아이의 글을 다루는 시선에는 너무 많은 것이 섞여 있습니다. 이 아이의 시에 대한 반응은, 정확히 작품에 대한 반응도 아니고, 아이의 어떤 세계과 그것이 일으킬 수 있는 문제에 대한 반응도 아닙니다. 사회 전체가 아이의 일기를 훔쳐보고 아이를 욕하거나, 아이가 처한 현실에 대해 욕하거나 하는 것과 흡사합니다. 시는 시지요.

그리고 이게 일기라고 해도, 아이의 엄마는 아이와 우선 대화를 해야지요. 결론은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히 파악한 다음에 내려진 거지, 일기나 시를 보고 내려지는 것이 아니지요.

3. 시를 생각하면 아이들의 언어가 시어와 유사한 측면이 있을 가능성이 있지요. 언어의 관습적 연결을 아이들은 결여할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아이의 언어에 대해서 아이와 이야기 나누는 것도 즐거운 일이겠지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시적 감수성은 아이의 동심과 같지는 않습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때로는 매우 의식적인 행위이기도 하고, 삶의 다른 경험들에서 발생하기도 합니다. 오랜 실험들의 결과이기도 하고요.

뇌의 이상이 있어서 좋은 예술작품을 만들어도 마찬가지입니다(제가 잘 모르는 이야기는 합니다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것이 예술작품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다른 방식으로의 경험과 과정들의 축적이 필요합니다. 예술이 주관적이라고해도(여기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필요하긴 합니다), 한 개인의 삶에서 매우 개인적인 것들이 형성되고, 그리고 그것들이 외부적으로 표현될 때에는 그것은 그저 순수한 천재적인, 자유로운, 이런것과 다른 과정들이 필요하겠지요. 모든 뇌의 이상이 천재를 만드는 것은 아니니까요.

  • 추천 1

또리님의 댓글의 댓글

또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좀 정리된 생각을 얘기하고 싶어 늦게 들어왔습니다.
상업주의, 상업적이란 표현은 다른 댓글 쓰신 두 분이 하셔서 제가 불편해하던 차, 가아닌양 님도 출판사는 돈을 벌고 싶었고, 그래서 일 처리를 잘못했다고 쓰셔서 꺼낸 이야깁니다. 상업적이란 지적을 할 때는 매우 신중해야 하죠. 상업과 생업, 예술가와 작업, 노동, 이런 것들은 칼로 자르듯 구분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2. 시는 원래 그런 방식의 (사회적) 반향을 일으킬 만큼 어떤 것을 직접 지시하지 않는다는 말은, 시는 그래야 한다는 당위인가요? 아니면, 시는 원래 장르가 그래서다, 인가요? 만일 어떤 시가 사회적 반향을 크게 일으켰다면, 그것은 시인이나 독자가 뭔가 잘못 짚은 건가요? 시에서 수용자 역할은 어떤 것인지요. 저는 앞서 댓글에서 수용자 몫을 강조했습니다만... 시를 시로써, 작품만으로 얘기해야 한다고 주장하시지만, 과연 왜 그래야만 하는가, 라고 되묻는다면, "시는 원래 그런 장르라서" 라는 대답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예술의 전통적 형식이나 기능을 좀 덜 경직되게, 유연하게 봐도 좋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이의 시를 일기와 비교해 보는 것도, 일기였다면? 이라는 가정도 이 상황에 전혀 필요가 없지요. 만일 일기였다면, 그걸 훔쳐 본 엄마를 완전히 혼내야 하겠죠. 일기는 글쓴이와 독자가 동일합니다. 아이는 이미 수상경력도 있고 세 번째 시집을 출간한 (공동 포함) 남에게 보이려 글을 쓴 아이입니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 엄마의 대응이 잘못됐다는 것 또한 너무 교화적인 이야기 같습니다. 엄마는 시를 본 후 당연히 대화를 했죠. 학원도 관두고. 실제 제가 엄마였다면, 저도 일단은 영어학원을 그만두게 하고 볼 것 같아요. 아이가 날 잡아먹는 공포 시를 본 그 날, 학원 못 보내죠. 이건 우리나라 전 국민이 가지는 영어 강박증, 특히 부모들이 늘 가지는 죄책감을 이해한다면 엄마의 반응도 당연히 이해 갑니다. 안그래도 미안했는데 내친김에 그만두기요. 제 친구는 초등학교 교사 (영어담당)인데 본인이 학부모가 되자 수도권을 떠나 강원도로 갔습니다. 조금은 인간다운 삶이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신해철도 조기 영어 교육 안 하는 유치원을 찾고 찾다, 결국 서울을 벗어나 이사했다고 생전 인터뷰에서 읽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부모는 삶의 터전을 옮길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을 겁니다.

뇌 손상과 예술성, 천재적 능력 등은 사실 저도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이를 소재로 한 영화는 많이 봤고, 예술가와 정신질환 다큐를 본 적은 있습니다. 예를 들면, 특정 뇌 부위를 손상한 평범한 사람이, 손상되지 않은 다른 부위가 상대적으로 폭풍 자극받으며 폭풍 성장해 창작에 몰두하고 전문가의 인정까지 받는 것. 이런 사례가 꽤 입증된다는 것. 말씀대로 예술이 그저 천재성 보다는 경험의 축적과 실험 등의 과정도 중요하다면, 제가 볼 때 이런 사례들은 그런 과정이 매우 밀도 높게 한꺼번에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시사합니다. 어린이 모차르트가 훌륭한 음악을 작곡할 수 있던 것도, 처음부터 음악 환경에 노출돼 단기간에 농축된 음악성 때문 아닌가 싶고요. 부모가 만들어주는 언어환경과 자극으로 압축 성장하는 시인 또한 가능할 테고요. 천재건, 환자건, 평범한 사람이건 양보다는 질, 물리적 시간보다는 농도겠죠.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일단 접습니다.

Stone님의 댓글

Ston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순수해야 할 나이에 순수함보다 잔인함을 먼저배우는게 현실에서
어린아이들에게도 따귀때리고 울면 보기싫으니 웃어라 강요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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