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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들이 역사인식을 오도한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692회 작성일 15-06-24 17:01

본문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은 무능한 임금이 아니었다
 
 
  1970년대 초반 서울의 출판계에 사상 처음으로 1백만부 판매시대를 열어주었던 책은 애석하게도 우리나라 작가의 것이 아니라 일본의 야마오카 쇼하찌가 18년에 걸쳐서 '도꾸가와 이에야스'라는 제목으로 일간지에 연재했던 것을 우리나라의 출판사에서 '대망(大望)'이라는 책명으로 번역출판한 20권짜리 전집이었다.
  책을 안 읽는 국민으로 알려진 우리나라 사회에서 더구나 당시 경제적으로 호황을 누릴 때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20권짜리의 책이 찍어내기 바쁘게 팔려나간 데 대해서는 여러 가지 평가를 할 수 있겠지만, 필자로서는 당시 이 책을 읽으며 작가인 '야마오카 쇼하찌'씨의 역사인식 방법에서 정말 큰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대하소설 '대망'은 임진왜란을 전후로 한 시대 일본 영주들의 야망과 각축을 마치 명인(名人)의 기보(棋譜)를 읽듯이 한 수 한 수에 의미를 부여하며 써 내려간 걸작이다. 일본 전국시대에 통일의 문을 연 오다 노부나가에서 시작해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거쳐 도꾸가와 이에야스가 막부를 세워 일본번영의 기초를 여는 과정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하나같이 적재적소에서 역사가 요구하는 제 몫을 하는 바둑돌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을 뿐 그 누구  한 사람도 패역무도라든가 무능한 사람으로 표현되지 않고 있다. 이는 작가가 갖고 있는 불교화엄철학의 영향이라고 짐작되지만,  20권의 대하소설을 다 읽고 책장을 덮으면서 느끼는 소감은 우리나라의 역사소설들이 다시 쓰여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히데요시나 이에야스 같은 인물들을 그토록 큰 인물로 묘사한데 대해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적 인물로서의 히데요시.이에야스와 문학작품 주인공으로서의 히데요시.이에야스를 평가하는 눈이 다르다는 것을 탓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일본인들은 이 역사소설을 통해 히데요시나 이에야스를 재발견했다고 떠들며 축배를 들었다.
  우리나라의 역사소설 가운데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춘원의 <마의태자>와 월탄의 <임진왜란>을 일본인의 <대망>과 비교해 다시 읽으면서 필자는 춘원이나 월탄의 역사를 통찰하는 안목이 그 명성에 비교해 매우 폭이 좁다 하는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
  춘원은 마의태자의 비분을 강조하기 위해 그 아버지 경순왕을 시종일관 무능한 임금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을 찾아보면 경순왕이야말로 백성을 제 자식처럼 어여삐 여긴 어진 임금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월탄은 <임진왜란>에서 충무공 이순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경상우수사 원균을 형편없는 졸장부로 그리고 있지만 왕조실록 등 사서에 나타나는 실제의 모습은 용장(勇將)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쇼하찌씨가 같은 소재를 갖고 소설을 썼다면 마의태자의 울분이 우국충정으로 표현되면서도 경순왕의 시세영합(時勢迎合)이 백성들의 안락한 삶을 위해 택한 최선의 방법이었음을 묘사했을 것이다. 또 이순신과 원균의 관계도 사사로운 탐욕을 노리는 적대관계가 아니라 국가대사를 염려하는 상호 보완의 관계로 그렸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 원로작가들의 역사소설은 이분법적 흑백논리가 너무나도 분명해서 한 사람의 충신을 그리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너무 지나치게 폄하하거나 역적으로 몰아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춘원의 소설 <마의태자>에 의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으로 "왕건의 딸에게 새 장가들기 위해 천년사직의 신라왕조를 몽땅 바친 못난 임금"으로 알려진 신라왕조 마지막 임금 경순왕이 사실은 "왕위보다는 백성의 고통을 더 살피는 훌륭한 임금이었다'라고 한다면 놀랄 일이 아니겠는가.
  여기에서 필자는 신라왕조의 마지막 어전회의 광경을 독자들에게 소개할 필요를 느낀다.
  이미 서라벌을 제외한 모든 국토가 견훤이나 왕건의 수하로 들어간 상태에서 기울어진 왕실의 통치력을 다시 일으켜 세울 힘이 없다고 판단한 경순왕은 고려의 왕건에게 나라를 넘기겠다는 어의(御意)를 어전회의에 부쳤다. 조정 대신들의 찬반 양론이 분분하자 태자가 나서서 결연한 태도로 말했다.
  "나라의 존망엔 반드시 천명이 있습니다. 마땅히 충신과 의로운 선비들과 더불어 민심을 수습하고 통합하여 버티어 가다가 끝내 힘이 미치지 못한다면 그때서야 그만 둘 일이지 일천년의 사직을 어찌 가벼이 남에게 넘겨 줄 수가 있겠습니까"
  이에 경순왕은,"외롭고 위태로움이 이토록 심한 판국에 이르러 대세는 이미 보전하기 어렵게 되었다. 기왕 강하지도 못하고 또 약하지도 못한 이 처지인 바에야 저 무고한 백성들을 싸움터로 끌어내어 참혹한 죽음을 시키는 일은 나로서는 차마 못할 노릇이다"라고 답하고 나서 국권이양을 결정했다.
  경순왕의 시호(諡號)인 '敬順'이라는 글자의 의미에는, 이 마지막 어전회의에서 밝힌 경순왕의 어진 백성사랑과 자신의 권력이나 왕실의 체면을 챙기는 사사로운 욕심에서 벗어난 '지심귀명(至心歸命)'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불교식 존경심이 담겨 있다. '마음을 다하여 명(命)에 귀의한다'는 불교의식 '지심귀명례'에서  우리 선현들은 '귀(歸)'를 "경순(敬順)하여 돌아감"이라고 풀이해 왔다. 따라서 정승공 김부의 시호를 '敬順'이라 한 데에는 이런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공개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한국불교의 한 모퉁이에서는,경순왕을 시조로 하는 경주 김씨의 문중이 대대로 지금까지 번창하는 까닭을 일러 "경순왕이 자신의 체면이나 왕실의 권위 따위를 가벼이 여기고 왕실의 통치권을 신흥세력가인 왕건에게 평화적으로 넘김으로써 당시의  백성들을 전쟁의 참화에서 구하는 큰 공덕을 쌓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만약에 그 때 마의태자의 진언을 받아들여 군사를 징집해 고려와 전쟁을 벌였다면 결국은 백성들을 참담한 도탄지경에 몰아넣고 자신도 멸문지화를 당하는 운명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경순왕의 장례에서 고려 태조 왕건이 말한 바와 같이 가여운 백성들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고개를 숙였으나 그것으로 오히려 모든 것을 얻었고 세세생생 이어지는 복덕(福德)을 쌓은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한국정치인들의 단견(短見)을 경순왕의 원려(遠慮)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토록 분명한 도리를 어째서 모르고 정치의 주도권 잡기에 모든 것을 버리는 지 알 수가 없다. 버려야 할 것은 잡고 늘어지면서 정말 붙잡아야 할 것은 던져 버리는 전도망상(顚倒妄想)에서 깨어나 敬順의 道가 통하는 우리 사회가 되기를....
 
추천1

댓글목록

한겨레님의 댓글의 댓글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팬교주님,오랫만입니다. 반갑습니다. 베트남에서의 한국군 양민학살 문제로 토론을 벌였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고희(古稀)를 넘기다보니 총기도 옛과 같지 않고 거동도 불편해져서 한 그루 고목처럼 살고 있습니다.

팬교주님의 댓글의 댓글

팬교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베트남 양민 학살에 관한 토론, 기억납니다.  맹호부대의 일원이셨던 한겨레님께서 웅변하시던 내용도 기억나구요.  저는 청룡 출신의 선배님들에게 들었던 얘기가 많습니다.  대부분 양민 학살을 인정하고 가슴아파 하시던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나저나 한겨레님 거동이 불편하시다니 안타깝습니다.  좋은 글 많이 쓰시면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시는데... 그저 건강 빨리 회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7순 정도, 요샌 나이도 아니라는... - 기원의 심정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올빼미님의 댓글

올빼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한겨레님의 글을 감사히 잘읽었습니다.
역사 소설을 쓰기위해선 많은 준비 작업이 필요합니다.
글 솜씨도 있어야지만 그에 못지 않게 역사적 상황과 배경에 대한 사전 준비작업이 필요하다 생각이 듭니다.
월탄 박종화나 춘원 이광수는 일제시절 역사에 대한 검증없이 열악한 가운데서 소설을 쓰신분들입니다.
그래도 이분들이 이런 소설이 쓰셨기에 대한민국의 문학이 이만큼 발전해온 것입니다.
저는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이전의 권선징악 일변도가 아닌 다양한 장르에 대한 시도와 그 완성도에 찬사를 보냅니다.
이제 바야흐로 한국문학이 세계문학과 견주어도 될만큼 장족의 발전을 했다고 봅니다.
님의 말씀대로 작품하나 하나가 역사를 올바로 전할수도 있고 왜곡되게 전할수도 있으니 독자들이 작품을 그냥 읽지않고 비판적으로 읽어야 된다고 봅니다.
님의 글을 읽으면서 어떤 인간의 무능함과 유능함을 논할때 우리가 기준으로 삼아야 할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경순왕은 신라 왕조를 지키는데는 무능했지만 무었보다도 희생없이 왕건에게 왕권을 양보함으로 자신과 백성의 희생을 막을 수 있었으니 유능했다 볼수 있습니다만 만일 왕건이 인품이 좋은 왕이었기에 경순왕의 양위도 빛을 발할수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만일 경순왕이 고종이나 순종처럼 왕위를 일본에 넘겨주었더라면 우리는 결코 경순왕을 좋은 왕이라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본은 한국인을 차별하고 착취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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