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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라는 건 대체 누가 발명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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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el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7-05 17:59 조회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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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날씨도 더운데 그리스 사태까지 겹쳐 체감온도는 더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 나랏빚이 3000억 유로, 국민총생산의 175% 라고 하지요. 아니 그럼 누가 이런 공채, 국채라는 건 발명해가지고 이 난리를 겪게 하누?  꼭 근대나 현대사회 들어와서 생겼을 것 같지요? 그런데 그게 아니고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생겼답니다. 그 옛날에.

당시 14세기 지금의 이탈리아는 남쪽은 나폴리의 왕, 중부지역은 교황, 북쪽은 피렌체, 베니스 그리고 제노바 등의 부자도시가 이런저런 이권을 놓고 전쟁을 일삼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부유하던 이 도시의 시민들은 전쟁은 자주 해도 직접 나가 싸우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우리가 어려서 동화책에서 보던 타이츠 신고 칼 찬 피렌체나 베니스의 도령님들은 칼싸움은 해도 전쟁에는 거의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럼, 남정네들이 전쟁에 안 나가는데 어떻게 전쟁을 하나?

용병, 즉 외국 군인을 돈으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후진 지역이었던 스페인, 북독일, 영국의 가난한 집 아들들이 돈을 받고 외국에 가서 군인이 되었습니다. 정한 날짜에 근처 들판에 모여 싸움을 했지요. 누가 용감하고 전투를 잘하는 군인을 끌어올 돈이 있는가에 승패가 달려있었습니다.

                                              {이미지:0} 
                                                        John Hawkwood 사진:위키

세계경제사를 바꾼 한 영국 용병(Söldner)의 이름입니다. 그는 당시 최고의 군인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곤 했는데 유명해져서 이탈리아에서 그를 초빙하려 할 당시 그의 나이가 60세 후반, 어디서는 70세 중반이었다고 합니다. 정확한 나이는 아마 자신도 잘 몰랐을 겁니다.

이탈리아에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돈 많은 은행가들이 있어 유럽의 왕들은 전쟁이나 기타 비용 충당을 위해 이들에게 자주 돈을 빌렸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은행가는 피렌체의 페루치 (Peruzzi)라는 가문 사람들이었습니다. 14세기 초, 프랑스와의 백년 전쟁 때문에 영국왕 에드워드는 이 은행의 최고 간부를 영국으로 초청, 아주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서 막대한 금액의 돈을 빌렸습니다.

당시는 교회에서 이자를 금지할 때였으나 이자라는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 수수료 등의 이름으로 이자 비슷하게 통용되었다고 합니다. 페루치가문에서는 좋아라 하고 왕에게 거금의 돈을 빌려줬지만 왕은 전쟁만 벌여놓고 망했습니다. 왕은 빚을 갚지 못하겠다고, 요즘 말로 디폴트를 선언해버렸습니다.

페루치가문을 비롯, 당시 영국왕에게 돈을 빌려줬던 피렌체의 은행들은 모두 망해버리고 도시는 가난해졌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피렌체는 이웃 도시들과 전쟁 속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피렌체에서는 혹우드 같은 이들 비롯,  많은 용병이 필요했지만 돈이 없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해결책은 딱 두 가지 였습니다. 전쟁을 포기하거나, 또 다른 방법은 시의 지배층에서 시민들에게 이자를 주고 돈을 빌리는 것이었습니다. 피렌체는 두 번째 방법을 택했고 다른 도시들에서도 이런 방법을 통해 자금을 조달, 외국의 용병들을 데려왔습니다. 이것이 현대사회 국채, 공채의 시작입니다.

경제사학책 같은데 등장하는 내용을 간단히 정리했는데요. 독일어로 원하시는 분들을 위해 인터넷에도 있는가 봤더니 정리해서 기사로 써놓은 것이 있군요.

http://www.wiwo.de/finanzen/staatsanleihen-italiener-erfanden-die-staatsverschuldung/51559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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