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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세기의 서평: 히틀러의 "나의 투쟁"(Mein Kamp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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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니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02-03-09 12:25 조회6,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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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99/04/16   조회수 : 83

■  세기의 서평: 히틀러의 "나의 투쟁"(Mein Kampf) /(FR 99.2.3)

히틀러의 대표저서를 문학작품의 차원에서 논하고 비평하는 것은 익숙치 않다. 하지만 히틀러의 동시대인이었던 한 사람이 33년 "나의 투쟁"의 문학적인 평가를 시도했다. 매우 위험한 일이었으나 감행한 것이다.그는 이미 명성이 없지 않은 사람이었으나 무명으로 머물고자 했다. 그 비평에서 V.S.라는 가명을 썼던 그 비평가는 다름아닌 당시의 체코의 장관(Ministerpraesident)인 Thomas G. Marssaryk이다. 그가 프라하의 한 독일어신문에 히틀러의 최초의 저서에 대한 비판적인 평론을 시도한 것이다.(Thomas G. Masaryk, "Hitlers Credo", in: Psychologie und Geschichte, Leverkusen 1998)

민주주의적 휴머니즘의 변호자로서 그는 모든 종류의 역사의 신화화를 거부했다.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이기도 한 그는 히틀러의 문체가 정치적 이상과 목표를 대중적, 정열적, 반감상주의적(unsentimental)으로 서술하는 데 특징이 있다고 보았다. 히틀러가 자신의 정적들에게 사용한 표현들은 "점잖은 상아탑용어"들에 대한 그의 반감을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Massaryk는 히틀러의 정치적 성향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군더더기나 미사여구없이 사물을 기술하는 히틀러의 서술방식은 모범적이라고 생각했다.

"히틀러는 대중성있게 자신의 정치적 강령과 기본관점을 구체적이면서도 정확하게 정식화할 줄 알았다. 이런 관점에서 많은 정치가들은 히틀러에게서 한 수 배워야 할 것이다."

Massaryk는 또한 명징한 정치적 분석을 해냈다. 그는 이미 민족사회주의를 이해하는데,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권력을 잡을 수 있었는지를 이해하는데 있어 이 저서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당시 히틀러가 "상당한 정도의" 반유태주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간파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극단적으로 관철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과 그는 달랐다. 그는 히틀러가 유태인 박해를 눈하나 깜짝않고 밀고 나갈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히틀러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히틀러에겐 정확성과 엄밀성은 문제되지 않았다. 그는 특히 히틀러의 민족과 국가에 대한 부정확한 정의, 종교와 교회분열사에 대한 불충분한 설명에서 그 결점을 찾았다. 히틀러의 맑시즘에 대한 비판도 근거없는 것이었다. 인종과 세계관의 관계도 그렇다. 민족사회주의에 중요한 진보의 개념에 대해서도 충분한 반성과 성찰이 없다.

그는 이 비평을 통해서 히틀러의 성격에 대해 딱 들어 맞는 판결을 내린다. 그는 히틀러를 "절대적인 자기감정"을 가진 광신자로 보았다. 바로 괴테가 위험한 것으로 분류한 유형의 인간이다. 니체적인 의미에서 앞뒤 잴 것 없이 무자비하고 강경하게 "자신만의 고유의 정열적인 기쁨"을 드러낸다. 그는 흔히 통용되는 바이마르와 포츠담이라는 대립쌍, 칸트와 Krupp이라는 대립물에 더해 같은 종류의 대립물로서 괴테와 히틀러라는 두 극단적인 대립쌍을 덧붙인다. 이 대립물속에서 그는 문화정치의 문제점을 간파해낸다.

이 글이 나온 시점을 생각해 볼 때 그의 서평은 대단한 성과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정치적 명망이 단지 그의 고향에만 머물지 않았던 그는 당시 이미 히틀러를 꿰뚫어 보고 민족사회주의를 유물주의의 변태로 그 정체를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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