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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일기·수필·문학 - 유학 일기 외에 사는 이야기 혹은 직접 쓴 시와 소설을 게재하는 곳입니다.

사는얘기 민망했지만 안 슬픈 이야기 :)

페이지 정보

작성자 honigte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6건 조회 3,564회 작성일 15-06-17 15:34

본문

요즘 슬픈 이야기가 많이 올라와 민망은 했지만 슬프지는 않은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대도시에 살다가 소도시로 이사 온 학생입니다. 여러사정으로 고민 끝에 학과와 학교, 동네까지 모두 옮겨 대도시에서 바이에른의 소도시로 이사왔습니다. 미리 치안과 인종차별 정도에 대해 알아보고 고려해서 고른 동네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참으로 평화롭게 살고있습니다. 이쪽도 강이 흐르는 동네인데 괜히 우울해질 때면 친구들과 강 주변에서 그릴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합법 그릴 장소입니다:)>

얼마 전에 은행카드가 고장나 새로 발급 받았습니다. 새 비밀번호를 잘 외워서 사용하고 있었는데, 분명 어제까지 잘 사용했던 카드가 계산대에서 계산이 안 되는 겁니다. 나중에 집에와서 비밀번호 우편을 찾아 확인해보니 맨 끝자리가 틀렸더군요. 두 번 누르고 두 번 다 틀렸다고 떠서, 더 눌렀다간 카드가 잠겨서 새로 발급을 받아야겠구나 싶어 현금으로 계산하겠다고 미안하며 지갑을 열었는데 센트만이 안녕 인사를 하네요. 순간 당황! 혀가 꼬이기 시작합니다.

어버버 거리며 진짜 미안하다 취소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때는 금요일 저녁! 사람들이 많은 시간대라 줄도 긴데... 기다리는 사람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하고 많이 당황했습니다. 다행히 산 물건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설탕이나 밀가루, 우유 정도를 사서 3유로 60센트 정도가 나와있었습니다.

근데 윗사람인 듯한 직원이 다가와서 다시 눌러보라고 하더군요. 제가 외국인이라 독일어를 잘 못 읽어서 실수한 것 같다고 자기네 끼리 이야기 하며. 저는 "당연히 독일어 읽을 수 있고, 평소에 잘 사용했었는데 내가 비밀번호를 까먹은 것 같아요. 틀리다고 나오네요. 정말 미안한데 그냥 취소해 주세요."라고 거듭 말했고 아주머님은 제 말을 듣지않고 기어코 서너번은 더 카드를 집어넣으며 투덜거렸습니다. "원래 5유로 부터 카드 계산이에요. 다시 눌러봐요. 뭐야? 이거 정지된 카드잖아?"

은행 카드는 여러번 틀리면 자동으로 정지됩니다. 저는 거의 울상이되어 다시 한 번 취소해달라고 미안하다고 웅얼거렸습니다. 얼굴이 화끈거리더군요. 이젠 그냥 밀가루고 뭐고간에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결국 윗사람인 것같은 직원 아주머니께서 저를 한 번 훑어 보시고 가라고 손짓했습니다. 도망치듯 그 자리에서 벗어나 시무룩하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누군가 뛰어와 저를 잡았습니다.

직원 아가씨도, 직원 아주머니도 아닌 모르는 독일 아주머님이셨습니다. 제가 당황해 왜 그러시냐고 묻자 따라오라고 저를 질질 끌며 다시 마트안으로 들어갑니다. 여담입니다만, 독일분들은 참 힘이 좋으신 것 같습니다. 마트에 저를 기어코 끌고 들어간 아주머님이 한 봉지를 제게 내밀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계산했어." 뒤에서는 그분의 남편이신 것 같은 분이 살짝 고개인사를 합니다. 봉지 안에는 제가 장을 봤던 게 들어있었습니다.

제 뒤에 줄서있던 분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저 때문에 줄이 멈춰 뒷분 눈치를 봤던지라 확실히 기억하는데, 뒷분은 백발의 할아버지셨습니다. 제가 당황해 괜찮다고 내가 카드 번호를 잘 못 눌러서 그런 거라고, 감사는 한데 정말 괜찮다고 고개를 젓자 이미 계산했다며 웃으시네요. 몇번이고 정말 괜찮다. 마음은 감사하다, 근데 정말 괜찮다 말을하고 급기야 <당시에는 너무 창피해서> 도망가려했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님이 저를 턱 잡더니 손에 봉투를 쥐어주시며 이렇게 말씁하십니다. "좋은 하루, 좋은 주말 보내렴!"

저는 그때도 너무 창피하다는 생각에 울상을 짓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주머님이 이미 계산을 한 상태였고 저는 뭔가 민망하고 찝찝한 마음에 결국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을 웅얼거린 후 물건을 받아 나왔습니다.

장본 것들은 다음날 소풍 때 음식이 되어 독일 친구들과 함께 나눴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왕 사주신 거 크게 웃어보이며 고맙다고 할 걸. 솔직히 지금도 감사하긴 한데 창피하고 창피하고 창피하긴 합니다. 하지만 그분이 저를 창피주실려고 선의를 베푸신게 아니라, 좋은 마음으로 대신 계산을 해주셨다는 건 확실합니다. 그때 제대로 웃으며 말씀드리지 못 한 게 죄송합니다. 감사했습니다!

웃긴 이야기인지 훈훈한 이야기인지 갈피를 못 잡겠네요. 결국 제가 민망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립니다. 만 19세에 독일에와 돈을 모으고, 그 돈으로 학원을 다니고, 다시 대학교에 들어가 알바를 하며 공부를 하고... 결국 100%자비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비록 학교를 옮기게 되는 일도 있었지만 이정도면 열심히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간 좋은 일만 있지는 당연~히 않았습니다. 학교를 옮기게된 원인인 교수님께 독일어나 새로 배우라는 면박을 받아 울어본 적도 있고, 일할 때 사장이 손녀뻘인 저에게 가벼운<?> 성희롱을하고 욕설에 도둑취급하기 콤보<범인은 사장 가족.>까지 선사해 줬던 적도 있고, 한인 모임은 앞으로 절대 안 나갈 거라며 이를 박박갈 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분명 나쁜일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새로 일자리를 옮겼을 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학비 문제로 한국에서는 지원서도 낼 생각을 못했던 제가 대학생의 삶을 즐기고 있습니다. 제주도도 졸업여행 때가 겨우 가봤던 내가 심심하면 옆 나라에 놀러가고, 파리에서는 많은 박물관이 유럽대학생 입장료가 공짜죠! 수업은 흥미롭고, 수학적인 독일어는 아름답습니다. 산책을 가면 푸르른 경치에 산새가 노래하고, 여기서 사귄 친구들은 한국에 있었다면 아마 인연이 없었을 사람들이죠. 뿐만아니라 원하기만 하면 여러 외국어도 학교에서 무료로 배울 수 있으며, 그외에도 프락티쿰이나 여러 세미나등 여러가지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습니다.

어디가나 이상한 사람들은 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살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물론 독일에서는 거기에 '동양인이기 때문에'겪는 일이 추가로 더 생겨나긴 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재미있는, 흥미진진한 일도 많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고싶습니다. 좋은 사람도 얼마나 많은데요:) 독일이라서 할 수 있는 일, 잡을 수 있는 기회도 얼마나 많고 많은데요! 이왕 여기서 살아보자고 마음먹은 거 나쁜일은 금붕어처럼 빨리빨리 잊어버리고, 좋은 일과 고마운 일만 모으며 살아갑시다.

좋은 하루 되세요!
추천8

댓글목록

landei님의 댓글

landei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바이어른 주는 통일전에 서독에 속했던 주입니다. 지도로 보면 동쪽에 있기는 하지만요.

리블링스에쎈님의 댓글

리블링스에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제가 그 현장에 있는 것처럼 가슴 졸이다가 오오!!!했다가 우왕ㅠㅠ감동!하면서 읽었네요. 저도 마트에서 눈물이 핑 돌만큼 창피했던 일도 있고 친절한 분들로부터 배려를 받고 감사했던 적도 있어서 많이 공감했어요. 근데 지금도 마트가기 전엔 왠지 긴장된다는...^^ 어쨌든!! Honigtee님의 글에서 긍정적인 힘이 느껴져요.  활짝 웃고 갑니다.  행복하세요~~

yxcvbnm님의 댓글

yxcvbnm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도 동양인이 없는 동네에 처음 이사왔을때는 모든게 어색하고
서먹거렸지만 이제는 수퍼에 가면 수퍼주인아줌마가 "아이들은 잘 있어요?" 부터 시작해서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과의 눈인사 , 친한 앞집할머니라도 만나면 길거리에서 30분동안 수다도 떨고 ,우리막내가 태어나고 집에 돌아오니 옆집 몇몇이 축하카드를 편지통에 넣어 주셨습니다.  한국에  살때는 이사를 자주 다녀서 느끼지못했던 이웃의 정감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jwsr님의 댓글

jwsr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마트 한편에 있을 게시판에 고마웠다는 메모라도 눈에 잘 띄도록 붙여두심이 어떨까요? 글쓰신 분께서 씩씩하고 밝으신 분 같아서, 앞으로도 좋은 일들을 많이 경험하며 지내시게 될꺼란 믿음이 오네요. 화이팅하세요.!!

  • 추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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