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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음식·맛집- 음식 관련 이야기를 나누는 곳입니다. 간단한 요리노하우나 맛집 정보 등을 공유하실 수도 있고 식재료에 대한 정보를 나눌 수도 있습니다. 이곳은 특성상 맛집에 대한 정보는 어느정도의 광고성이 있더라도 관용됩니다. 너무 빈번한 경우만 아니라면(한달에 한번) 한식당 혹은 메뉴 등에 대해 홍보하셔도 됩니다.

취나물과 심수봉

페이지 정보

작성자 초롱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4건 조회 4,077회 작성일 13-06-02 20:16

본문

엊그제 고마운 사람이 한국에서 마른 나물을 보내줬다. 취나물과 방풍나물이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이라 보내긴 하지만 혹시 요리하는 데 너무 번거롭지 않을까 걱정이 살짝 된다면서. 그래도 몸에 좋은 거니까 맛있게 먹고 부디 건강하라는 부탁과 함께.

나는 이런 나물들을 한국에서 먹어본 기억이 없다. 나는 청소년 시절에 독일에 왔기 때문에 한국 음식이라곤 집 반찬 밖에 모르는데, 당시 우리 집 밥상에는 보편적 가정에서 대를 이어 전수되는 전통적인 반찬이 오르지 않았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지 못한 우리 엄마는 전통적인 요리를 보고 배울 기회가 없어서 그랬겠지만 자신이 개발한 맛난 신식요리를 상에 올렸다. 그래서 나는 빈대떡 등 여러 전통음식을 독일에 와서 독립한 후에 처음 알았다.

내가 취나물을 처음 알게 된 건 10년 전의 일이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알게된 친구가 나를 처음 방문했을 때 나는 정성을 다해 상을 차렸다. 그 친구가 취나물을 좋아해서 이스라엘이고 어디고 세계 방방곡곡 그걸 들고 다니다가 대마초 아닌가 의심 받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길래 나는 한국 가게에서 말린 취나물을 한 봉지 사왔다. 할 줄도 모르면서 기름에 달달 볶다가 물을 부어 끓이다가 내 맘대로 대강 한 접시 만들어 내긴 했는데 뻣뻣하고 줄기가 딱딱 씹히는 것이 아무래도 실패한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먹어본 음식이 아니니 알 수가 없었다.

상을 차리면서 친구에게 나물 접시를 보여주며 "이거 아무래도 망친 것 같으니 정성만 먹어라"하고는 도로 싹 치웠다. 친구는 "잠깐!"하고 손으로 하나 집어먹어 보더니 맛있다고 죽는 시늉을 했다. 그럼 원래 이렇게 딱딱하게 먹는 음식인가 싶어서 상에 내놨다. 친구 남편도 마치 장모님 나물처럼 맛있다며 마구마구 집어 먹어서 취나물 접시가 금방 비워졌다. 오홋, 소 발에 닭 잡았나? 역시 나는 요리에 천재인 게야.

멀리서 나물을 보내준 사람 성의도 고맙고 10년 전에 내 취나물을 맛있게 먹어준 친구 생각도 나서 이번에는 제대로 한번 도전해보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검색했더니 에그머니나 복잡도 하시지, 밤새도록 불렸다가 삶았다가 씻었다가 볶다가 또 다싯물을 부어서 끓이다가 자작하게 졸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도를 닦듯이 하라는 대로 정성껏 다 했다. 어머나, 보들보들하게 입 안에서 녹는 내 취나물. 애고 불쌍한 신주야, 너 또 오면 내가 이렇게 맛있게 만들어 줄게.

Berggemüse.jpg

남편은 나물 접시에 젓가락도 안 댔다. 무슨 풀인지 나뭇잎인지 모르지만 인간이 잔인도 하지, 말렸다가 불렸다가 삶았다가 씻었다가 볶다가 또 끓였다가 졸인 이 음식에 비타민이고 뭐고 남아있겠냐는 거였다. 나는 남편이 그러거나 말거나 보드라운 취나물과 방풍나물이 너무 맛있어서 두 번 다시 권하지도 않고 혼자서 다 먹었다. 숨도 안 쉬고 밥 두 그릇을 뚝딱 비웠다.

비오는 일요일, 점심을 그렇게 맛있게 먹고 남편이랑 나란히 앉아서 컴퓨터를 했다. 남편은 무슨 프로그래밍을 하고 나는 탈핵 관련 번역을 했다. 각자 헤드폰을 끼고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취나물 때문에 신주 생각이 나서 그랬는지 심수봉 노래가 듣고 싶었다. 신주는 심수봉 팬이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백만 송이 장미, 무궁화... 심수봉 노래 정말 좋다. 감정이입이 되어 나도 모르게 흥얼흥얼 노래를 따라했나 보다. 남편이 옆에서 고개를 획 돌리더니 칙 째렸다. 왜 그러냐고 눈으로 물었더니 나 보고 시끄럽다고 노래하려면 다른 방에 가서 하란다. 그런데 자기도 헤드폰을 끼고 있어서 목소리가 버럭 천둥을 친다.

아이 깜짝이야, 승질도 지롤이네. 아까 나물 나 혼자 다 먹어서 화났나? 한번 더 권해볼 걸 그랬나?

심수봉 노래 '무궁화' 함께 들어요.




백만송이 장미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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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한겨레님의 댓글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랫만에 초롱님 글을 대하니 반갑습니다.  취나물 잡수시고 애잔한 목소리의 심수봉 노래를 들으시는 모습이 눈 앞에 선합니다.  독일 산야는 취나물의 보고이니 5~6월 두 달 동안 채취해서 살짝 데쳐내서 말려두면 일년 내내 맛있는 나물 먹을 수 있지요.  수리취, 곰취, 개미취, 미역취, 떡취, 곰취, 머위, 참나물 등등이 데쳐서 말려두었다가 요리해 먹는 "묵나물"인데 독일 어느 들판이나 숲속에서 자생합니다.

rhein님의 댓글

rhein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글 잘 쓰시는 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정말 재밌습니다 아웅다웅 조곤조곤 ~ ㅋㅋ
속편 없습니까 초롱님?
<깻잎과 나훈아>는 어떤지요? ~ ㅋ

초롱님의 댓글

초롱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하하, 제 글보다 님들의 댓글들이 더 재밌어요.

팬교주님, 오래간만어요. 즐겁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안녕하시지요?

한겨레님, 이사는 잘 하셨는지요. 취나물이 독일에도 있군요. 몰랐어요. 뭐가 뭔지 잘 모르니까 겁나서 안 뜯어먹게 되더라구요. 웬 독일남자가 독초일지도 모른다고 하도 겁을 줘서리... ㅠㅠ

라인님, 안녕? 속편 있어요. 제목은 <봄나물과 바라지>랍니다. <깻잎과 나훈아>가 몹니까, 우우. 전 지금 조용필의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듣고 있어요. 아, 좋다. 라인님도 이 노래 아시나요?

물봉선님께선 하마 <봄나물과 바라지>의 깊은 뜻을 알랑가몰라. 근데 초롱이가 나물 반찬을 만들면 왜 봉선이 눈에서 눈물이 난대요? 아참, 우리 결혼한 사이던가요? 아니면 내세를 기약하고 약혼이라도?

마음이 하해와 같이 넓으신 하키님, 욕을 해도 귀엽다고 웃으시는군요. 근데 저 말을 독일말로 뭐라고 번역하면 독일남자가 화내다가도 화가 스르르 사그러질까요?

정다운 베리의 님들, 전 이만 자러 들어갑니다. 전 새나라의 어린이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는 사람이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니다. 구테 나하트.

유미님의 댓글

유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걍 갈라고 하다가..초롱님글이네요.음악 싸비쑤까정...ㅎ ㅎ ..
감칠맛나요. 님의글은..벡만송이 장미..넘 좋아요..
전 취나물을 물에 충분히 불렸다가 꼭짜서 삶아서 또 한 번 꼬옥 짜서...초고추장 양념으로 무쳐서  먹었답니다.아주 오래전에... 남쪽동네 장마..엄청나던데요..뮌헨은 다행히 피해는 없는 것 같아요..서울서 울언니가 전화하면서 독일장마 ,걱정하더군요..

목로주점님의 댓글

목로주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남편분이 몰라도 정말 너무 모르시는군요.

원래 말렸다 불렸다 삶았다 씻었다 볶았다 또 끓였다 졸인 푸성귀에는 '맛'이 남습니다.

미미모나님의 댓글

미미모나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다행히 제 남푠도 나물을 안 좋아합니다..ㅎㅎㅎ

그나저나 심수봉씨는 정말 애간장 다 녹이네요.. 오랜만에 재밌는 얘기 정다운 노래 잘 읽고 잘 보고 갑니다..

초롱님의 댓글

초롱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유미님, 오래간만! 이자르 강이 불어나서 콸콸거리며 흐르고 있어요. 뮌헨은 위험수위를 벗어났는데 남독 다른 지방에선 난리가 났습니다. 아직 위험한 지역이 많아요. 그나저나 유미님은 요즘 많이 바쁘신가 봐요?

목로주점님, 한마디로 빵 터졌어요. 맛이 남는다고라... 근데 번역해주지 못하겠어요. 이 사람 안 웃을까봐.

미미모나님, 다행이라고 하시니 동병상련의 정이 느껴져서 기뻤어요. 저도 이번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물 혼자서 다 먹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나쁜 점은요, 남편이 잘 안 먹는 음식은 저도 잘 안 하게 되더라구요. 미역국처럼.

초롱님의 댓글

초롱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늘 남편에게 목로주점님의 말씀을 번역했줬는데 이 남자 정말 안 웃는 거 있죠. 멀뚱멀뚱 하면서. 내 독일어가 시원찮았던가 이 사람 유머 코드가 우리 사람이랑 다르던가. 으휴 속 터져.

독일멋쟁이님, 제가 베리 먹거리 텃밭은 열심히 지키죠, 물론.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어서 침묵하고 있지만 열심히 읽는다고요. 작년 여름엔 독일멋쟁이님 글 읽고 발코니에서 기르던 토마토 순을 똑똑 다 따줬거든요. 자랑해야지.

Jivan님, 가까이 사시면 한 접시 드리고 싶다. 올 가을에 법륜스님이 독일에 오신대요. 그때 뮌헨 법회 열리면 난 나물 반찬 해가야지. 어디 사시는지 모르지만  Jivan님 오시면 제 나물 드실 수 있을 텐데...

Jivan님의 댓글의 댓글

Jivan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베리 접속 경고로, 제 사정으로 이제 들어와 봤더니,
이 감격!!! 
마음같아선 염치 무릅쓰고 당장 달려가고 싶은데 너무 머네요. ㅜㅜ
좀 가까우면 법륜스님도 뵙고 초롱님도 뵙고 하면 좋을텐데.
나물은 그새 잊어 버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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