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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기각하는게 쉽지 않은 듯 하군요~…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상우이름으로 검색 댓글 5건 조회 4,145회 작성일 04-05-05 12:53

본문

우선 탄핵소추안가결을 입법부의 2/3가 찬성했다는 데서 삼권분립의 원칙에 의해서 견제와 균형 또는 그 고유한 권리는 인정해주어야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탄핵소추안가결절차과정에서의 중대하고 명백한 법의 흠결이 없다는 것을 헌법재판소가 인정했다고 보여지며
세번째는 탄핵기각을 위해서는 법률적으로 절차를 밟아 명기되어 있는 탄핵사유에 법적인 논리정연한 반박이 있어야합니다.
특히 사법부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는 성문화되지 않은 불문법이지만 헌법의 원리에서 도출된 조리라는 최후의 보충적 법의 판단.인식근거라는 것이 있어서 '평등의 원칙'에 의한 '자기 구속의 법리'를 여러 판례들과 함께 그냥 무시하기가 힘들기때문입니다.
단순히 권력층의 압력으로 해결될 것이면 법치주의국가도 아니겠지만 오히려 탄핵기각을 바라는 측면에서라면 오히려 탄핵판결이 장기화되는 것이 노무현대통령쪽에 한가닥 희망을 가져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법적으로 반박할 시간이 오히려 필요했을지 말입니다.

이상은 제가 탄핵인용.기각을 떠나서 법리적으로 한 번 따져본 내용이니 착오없길 바랍니다~
추천6

댓글목록

법학도에게님의 댓글

법학도에게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소위 유럽에서 법을 공부하신다면, 법을 처음 만들고 발전시킨 자들이 누구인지 아실겁니다. 귀족 세력에 빌붙은 부르조아가 그들이지요. 법은 가진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발전되어 온 게 사실입니다.
법을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은 법이 인간 사회 최대의 원칙이라고 착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 시점에서는 왜 법대로 처리된 일이 국민의 의지와는 반대로 가고 있는가를 반성해 봐야합니다. 그 잘난 법대로 그 전의 독재자들을 왜 국회에서 탄핵하지 못했는가를 고민해봐야 합니다. 왜 그 잘난 법대로 내란죄을 지은 전두환이 사형되지 않았나 되새겨봐야 하는 겁니다.
그게 진정한 법학도가 가져야할 고민입니다.

펌님의 댓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제 칼럼 http://column.daum.net/sion/ 에 새로 가입하신 분이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심한 편견을 표현하는 질문을 하시던 중 오늘은 군사반역자가 아니냐고 물으시기에 제가 이렇게 답글을 달았습니다:

  (아무개)님을 환영하며 님의 질문을 감사하게 받아들입니다.  거짓말을 지어내고 확대 재생산하는 무수한 사람들, 자기네 거짓말에 속아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과 달리 이렇게 님처럼 그래도 이렇게 어떤 주장과 소문의 진실 여부를 확인하시려는 태도를 가지신 분에서 우리는 희망을 찾습니다.  님은 진정 이 시대의 지성인이십니다. 

  만일 님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하신다면 이런 사실이 아마 참고가 될 것입니다.  그 어른은 군에서 사단장 시절에 구보 훈련 때 사병들 맨 앞에서 뛰시던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1사단장으로 승진하시기 전에 공수 여단장이셨을 때는 장성이 직접 공중 낙하 시범을 사병들에게 보여주는 특이한 장성이었습니다.

  님이 군대 갔다 오셨다고 하셨으니 이처럼 구보 훈련 때 사병들 맨앞에서 뛰고, 공수 훈련 시범을 직접 보여주는 장군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일반적으로, 군대에서 장성의 권위는 사병들의 눈에 뛰지 않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전두환 장군에게는 특이한 스타일의 리더십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수 여단장 시절에 이렇게 솔선 수범하는 근무를 하셨기에 당시 이희성 장군이 제1군단 군단장으로 재직하던 1군단 예하 1사단장으로 1978년 1월에 승진하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참고로, 광주 사태 진압에 직접 관여한 두 주요한 장성은 광주 인사인 정웅 장군과 1980년 당시 계엄사령관 이희성 장군이었습니다.)

  그리고 1사단 사단장으로 근무하시던 1978년 여름에 최초로 땅굴을 발견하신 것이 공로로 인정되어 그 이듬해 8월에 보안사령관으로 승진 발령되셨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여하튼 국가 원수 박정희 대통령께서 정보부장 김재규에게 시해당하시던 10.26 사태가 발생한 것은 전두환 소장이 보안사령관으로 부임한지 불과 두어달 만의 일입니다.  이 어른이 전방에서 사병들과 더불어 구보하시던 때가 바로 몇달 전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참으로 역할의 변화였습니다. 

  김재규가 누구였습니까?  이희성 중장이 1군단장으로 근무하시던 1군단은 3군사령부 예하 부대였는데, 김재규가 바로 3군 사령부 사령관으로 있다가 정보부장이 된 인물이었습니다.  당시 군 최고 지휘관이었던 정승화 참모총장과 친구 사이였던 이분은 중공군 팔로군 출신인 정승화 장군보다도 오히려 더 군부의 실세였을 것으로 관측됩니다.  따라서, 만일 그의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직후 만일 전두환 장군의 신속한 행동이 없었더라면 김재규 구데타의 시나리오가 가능하였습니다.

  당시 김재규의 구데타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정승화 장군이었는데, 정 장군은 김재규를 체포하기는 커녕 오히려 김재규 편에 기울어져 있었던 듯합니다.  그리고 최규하 국무총리 역시 아무런 손을 쓰지 않고 있었습니다.  아니, 군부 실세였던 김재규를 감히 건드리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당시 김재규에게 구데타 음모가 있었는는 별도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당시 정황은 그런 시나리오를 가능케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그가 국가 원수가 시해된 사건을 당분간 공포하지 말도록 지시하였을 때 그의 의도가 수상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김재규의 위세에 눌려 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이 시해된 이 비상 사태를 국민에게 알릴 수 없었으니 비록 국민은 모르고 있었으나, 그 얼마나 숨막히던 순간이었습니까?

  정치에 전혀 이해 관계가 없는 한 역사학도의 시각으로 제가 바라볼 때 김재규의 군부 구데타를 저지한 것은 당시 신임 보안사령관 전두환 장군의 발빠른 행동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 이후 사실상 최고 권력자였던 김재규를 감히 누가 목숨을 걸고 체포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다행히도 그때 우리나라에 그럴 용기를 가졌던 장군 한 분이 있었습니다.  별을 달고 낙하 훈련 시범을 보이던 장군, 사병들과 더불어 뛰던 장군이라면 그런 기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김재규가 그의 군 인맥을 동원시키는 불행이 닥치기 전에 신속하게 국무위원들과 상부에 보고하여 정승화 장군으로부터 김재규 체포 명령을 받아낸 것은 김재규의 구데타를 차단하는 행위였습니다.

  김재규의 구데타는 더 이상 진행되기 전에 전두환 장군에 의해 예방되었기 때문에 그에게 참으로 구데타 의도가 있었는지는 풀지 못할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김재규의 그 이후의 계획이 무엇이었든 그가 정국의 주도권을 계속 장악하고 있으려 하였던 사실,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만일 김재규가 신속히 체포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마 매우 불행한 미래를 맞이하게 되었을 것이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뒤로 후퇴하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님은 구데타를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김재규의 구데타를 사전에 예방한 분을 님은 군사반역자라고 보십니까?  (사실, 김재규의 박정희 대톨령 시해는 그의 성격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그는 시기심이 강한데 그날 박 대통령께서 김재규의 경쟁자 차지철 경호실장은 추켜세우시고 김재규는 깍아내리셨다고 합니다.  따라서 그의 대통령 시해 동기가 비록 계획된 구데타는 아니었다 할지라도 시해 사건 이후 그는 구데타 혹은 구데타에 준하는 행동을 선택하였을 가능성이 아주 농후합니다.)

  여기서, 잠시 5.18 광주 사태도 언급하겠습니다.  본래, 정말로 구데타를 일으키려던 자는 김대중씨였습니다.  1980년에 누가 구데타를 일으키려 하였느냐의 기준은 누가 최규하 대통령을 하야시키고 정권을 잡으려 하였느냐의 물음에 귀착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누가 최규하 대통령을 강제로 하야시키려 하였습니까?  김대중씨였습니다.

 5.18 단체는 5.18 민주화운동의 주역이 구두딱이, 때밀이, 고등학생, 실업자, 노동자, 전과범 등(도청에 다이너마이트 폭파 장치를 하고 기관총을 발포하였던 강경파들)이라고 기록을 남기지만 여기에 교묘한 숨김이 있습니다.  본래 5월 21일 민중봉기를 계획하였으며, 훗날 다수가 광주민주화 운동 포상을 받은 이들이 있습니다.  김대중 홍위병들이 최규하 대통령을 하야시키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김대중씨를 대통령으로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것을 가리켜 쿠데타라고 말합니다. 

  김대중씨 홍위병들의 5월 21일 전국적 민중봉기 계획이 폭로된 때는 1980년 5월 16일 오후 6시 이화여대 강당에서 전국 홍위병들의 비밀연속회의가 당국에 적발된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튿날인 토요일 비상국무회의가 열려 5.17 계엄 확대가 그날 자정에 선포되었습니다.  그리고 비상국무회의에 앞서 당시 국무총리는 전국지휘관회의를 소집하고 더 이상 내무부가 치안 유지를 할 수 없는 이때에 군부가 나라를 구하기 위한 애국적 결단을 내려달라고 호소한 바 있습니다.

  육군본부 이희성 장군의 지휘 하에 계엄군이 전국 각 대학교에 보내지기 시작한 것은 이때였습니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휴교령과 더불어 계엄군은 전국 각 대학교에 동시에 배치되었습니다.  계엄군이 광주 전남대학교와 조선대학교에만 배치되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5.18 광주 폭동을 처음으로 선동한 이는 당시 북한 공산주의 서적에 심취해 있던 윤상원이었습니다.  그는 본래 5월21일로 예정되어 있던 민중봉기의 주동 인물은 아니지만 전국적 민중봉기를 당국이 5.17 계엄확대로 예방하려 하자 충동적으로 폭동을 주동하고 광주 사태의 리더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면 누가 광주 사태를 진압하였습니까?  비록 그것이 과잉 진압이었다는 시위대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 하더라도 그 시위 진압 명령자는 광주 출신 장성이요 국회의원인 정웅 장군이었습니다.  아니, 자기네 지역 인물인 정웅 장군이 광주 사태 진압 명령자라는 사실을 광주 시민이 모른다면 누가 안다는 말입니까? 

  당시 정웅 소장이나 전두환 소장이나 직급이 거의 비슷하였습니다.  전혀 정웅 소장의 지휘 계통에 전두환 장군은 관련되어 있지 않았으며, 더구나 그 수하에 몇명의 수사 병력밖에 없는 전두환 소장은 전혀 작전에 관여할 위치에 있지 않았습니다.  님이 군대 갔다 오셨다 하니 군대 행정상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아실 것입니다.   

  광주의 정웅 장군이 시위를 진압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었는지 시민군과 군경 사이에 발포 사건까지 터졌기에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직접 시위 진압 작전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광주 사태 진압 작전은 전두환 장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세치혀가 무슨 거짓말도 지어낼 수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광주 사태 진압 명령자는 비록 그것이 시민군의 주장대로 과잉 진압이었다 하더라도 광주 출신(광주 인근 태생) 정웅 장군이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광주 시민들이 그 누명을 엉뚱한 어른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이 광주 시민의 명예라고 저는 생각치 않습니다.  더구나 저는 그런 거짓말을 남에게 강제로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이 민주화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거짓말도 너무 오래 계속되면 역사가 왜곡됩니다.  이제 진실을 말해야 할 때입니다.

  _______________

  *  이 글은 본래 제가 10월 16일 어느 분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썼던 글인데, 이 글의 제목을 "전두환은 군사 반역자인가?"라고 붙여서 옮기산 분이 있으셔서 여기 그대로 붙입니다.
 

 

http://www.geocities.com/sion_preaching/sisa

점점가관일세님의 댓글

점점가관일세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위 분은 슬픈 우리네 역사를 들쑤시고 계시네요.
한번도 민중혁명이 성공한 적 없는 나라. 그러나, 이성계 박정희 전두환까지 힘으로 혁명에 성공했던 역사. 성공한 혁명에는 늘 용비어천가가 따르는 법.
이제 겨우 선거를 통해 시민혁명이 성공하여 국가의 힘을 국민에게 되돌려 줄 수 있어 다행이지만요.

큰일날 사람일세님의 댓글

큰일날 사람일세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전두환을 저렇게 평가하는 사람이 아직도 이땅에 남아있는가?
부정축재, 재산은닉, 광주 학살..., 10.26 이전 훨씬 전부터 박정희의
뒷편에 서 있던 전두환을 정녕 모르고 저런 글을 썼단 말인가?
교묘한 글로 사건의 책임자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겨 버리는 읽는 이로 하여금 판단을 흐리게하고 사실을 왜곡하는 저런 글을 쓴 사람이
이땅에 버젓이 살아 있음이 서글플 따름이다. 혹시 저글 조갑제란놈이
쓴거 아닌지 모르겠다. 아님 말구.

대한민국님의 댓글

대한민국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하하하...
전두환씨 훌륭한 분이군요.
광주학살이라는 엄청난 업적을 이루신 분이죠.
어때요? '펌'님도 전두환씨처럼 백담사에 유폐생활을 해보시는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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