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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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품마렵다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3건 조회 1,200회 작성일 15-12-29 04:44본문
펌글입니다. 원글주소: https://www.facebook.com/SNUBamboo/posts/965161423575490?pnref=story
편의점 알바를 하다 문득, 이렇게 사는 것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 시급만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받는 돈만큼만의 책임을 지며 사는 것. 누구로라도 대체될 수 있고 누구도 나에게 뭔가를 기대하지 않는 그런 자리. 술자리에서라면 마르크스와 니체를 들먹이며, 흑백 기억 속의 채플린을 주워섬기며 스스로 노발대발 부정하였을 그런 생각. 안 그래도 계절학기인데 오늘은 누군가 대단한 사람의 생일이기까지 하여 사람이 워낙에 없어서 그런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아직도 무언가가 되고 싶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위를 쳐다보던 고개는 조금씩 숙여져 이제는 앞을 보고 있다. 그 앞에 있는 것은 험난한 길. 걸음을 떼어놓기 두려울 정도로 나는 작고 나태하다. 무기력하다. 서울대 합격이라는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고 거기에 안주해버린, 나약한 존재. 또아리를 틀고 스스로의 안으로 가라앉아버린 겁쟁이. 이제 그 고개가 죄스럽게 푹 숙여져 바닥에 꽂히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
그런 나에게 포스기 앞은 썩 나쁜 자리가 아니다. 바코드를 찍고, 카드를 긁거나 거스름돈을 주고. 어렵지 않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기 힘들다. 노트북 화면에 명멸하는 영상들을 눈으로 훑으면서도 할 수 있는 일. 화면 속 누군가를 동경할 여유는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동정하는 것은 가까스로 막을 수 있을 만큼은 바쁜 일. 그러니까 앞으로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도, 더 나빠지리라는 절망도 없이 사는 것. 그 얼마나 평온한 삶이냐. 그것을 지루하다고 욕해서는 안 된다. 실지로 비루할지라도 누군가의 삶을 그런 식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단념을 체득한 삶이란. 두 단애 사이로 난 대로를 걸어가는 생이란 그 얼마나 탄탄한가. 삑!하고 찍히는 바코드의 숫자같이 얼마나 명료한가. 그러니까 그렇게라도 살 수 있다는 것은 나쁘지 않은 것이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가끔은 봉투 드릴까요. 그 얼마나 단순한 언어냐. 학문, 인문학의 언어는 반면에 어찌 그리도 복잡하냐. 비가 오는데 오지 않을 수 있는가, 옳음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인가. 세상이 그렇게도 인문학을 필요로 하면 왜 늘 위기가 도사리고 있으며, 인문학도의 자리는 바늘 대가리 꼴이란 말이냐. 그런데도 시류에 영합하는 것이 무엇이 그리도 그르냐. 당장 먹고사는 것이 문제인데.
상념을 끊고 손님이 들어선다. 대학원생은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학부생이다. 눈가에 피로 대신 행복이 매어달린 것을 보면. 불콰한 목덜미에서 술 냄새를 맡으라면 맡을 수 있을 것도 같다. 가까운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흔적이다. 그의 머리와 어깨가 살짝 젖어 있다. 하얀 눈송이 몇 개도 붙어있다. 건조한 목소리로 묻는다. 밖에는 눈이 오고 있냐고. 의아한 듯 그는 그렇다고, 지금은 많이 온다고 답한다. 그렇구나.
문득 편의점을 마치고 학교에 올라가야지 생각한다. 사붓이 눈 내린 버들골이 불현듯 보고 싶어서이다. 아무의 발길도 닿지 않은 그곳을 눈을 감고 헤매이리라. 아무 생각도 없이. 생각을 지우려면 맥주 한 캔을 챙겨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성 싶다. 서리처럼 옅게 깔린 눈이 뽀드득 소리를 내며 부서지면 좋으련만. 그러면 아무래도 좋으련만. 그러면 그 놈의 먹고사는 문제 따위야.
서른 너머 시인이면 어떠랴. 그걸 남들은 망나니라고 읽는다고 한들 어떠랴. 학문도 단념 못하고 연애도 단념 못하고 새로운 것을 단념 못하고 발명을 단념 못하고 착한 사람이고자 하던 일도 단념 못하면 어떠랴. 대신 그 고상한 섭생법, 이를테면 포스기 뒤편에 앉아 노트북 화면이나 뒤적거리는 것, 그 따위를 단념하면 어떠랴. 그 또한 삶일 텐데. 내 삶일 텐데.
편의점 알바를 하다 문득, 이렇게 사는 것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 시급만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받는 돈만큼만의 책임을 지며 사는 것. 누구로라도 대체될 수 있고 누구도 나에게 뭔가를 기대하지 않는 그런 자리. 술자리에서라면 마르크스와 니체를 들먹이며, 흑백 기억 속의 채플린을 주워섬기며 스스로 노발대발 부정하였을 그런 생각. 안 그래도 계절학기인데 오늘은 누군가 대단한 사람의 생일이기까지 하여 사람이 워낙에 없어서 그런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아직도 무언가가 되고 싶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위를 쳐다보던 고개는 조금씩 숙여져 이제는 앞을 보고 있다. 그 앞에 있는 것은 험난한 길. 걸음을 떼어놓기 두려울 정도로 나는 작고 나태하다. 무기력하다. 서울대 합격이라는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고 거기에 안주해버린, 나약한 존재. 또아리를 틀고 스스로의 안으로 가라앉아버린 겁쟁이. 이제 그 고개가 죄스럽게 푹 숙여져 바닥에 꽂히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
그런 나에게 포스기 앞은 썩 나쁜 자리가 아니다. 바코드를 찍고, 카드를 긁거나 거스름돈을 주고. 어렵지 않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기 힘들다. 노트북 화면에 명멸하는 영상들을 눈으로 훑으면서도 할 수 있는 일. 화면 속 누군가를 동경할 여유는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동정하는 것은 가까스로 막을 수 있을 만큼은 바쁜 일. 그러니까 앞으로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도, 더 나빠지리라는 절망도 없이 사는 것. 그 얼마나 평온한 삶이냐. 그것을 지루하다고 욕해서는 안 된다. 실지로 비루할지라도 누군가의 삶을 그런 식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단념을 체득한 삶이란. 두 단애 사이로 난 대로를 걸어가는 생이란 그 얼마나 탄탄한가. 삑!하고 찍히는 바코드의 숫자같이 얼마나 명료한가. 그러니까 그렇게라도 살 수 있다는 것은 나쁘지 않은 것이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가끔은 봉투 드릴까요. 그 얼마나 단순한 언어냐. 학문, 인문학의 언어는 반면에 어찌 그리도 복잡하냐. 비가 오는데 오지 않을 수 있는가, 옳음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인가. 세상이 그렇게도 인문학을 필요로 하면 왜 늘 위기가 도사리고 있으며, 인문학도의 자리는 바늘 대가리 꼴이란 말이냐. 그런데도 시류에 영합하는 것이 무엇이 그리도 그르냐. 당장 먹고사는 것이 문제인데.
상념을 끊고 손님이 들어선다. 대학원생은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학부생이다. 눈가에 피로 대신 행복이 매어달린 것을 보면. 불콰한 목덜미에서 술 냄새를 맡으라면 맡을 수 있을 것도 같다. 가까운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흔적이다. 그의 머리와 어깨가 살짝 젖어 있다. 하얀 눈송이 몇 개도 붙어있다. 건조한 목소리로 묻는다. 밖에는 눈이 오고 있냐고. 의아한 듯 그는 그렇다고, 지금은 많이 온다고 답한다. 그렇구나.
문득 편의점을 마치고 학교에 올라가야지 생각한다. 사붓이 눈 내린 버들골이 불현듯 보고 싶어서이다. 아무의 발길도 닿지 않은 그곳을 눈을 감고 헤매이리라. 아무 생각도 없이. 생각을 지우려면 맥주 한 캔을 챙겨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성 싶다. 서리처럼 옅게 깔린 눈이 뽀드득 소리를 내며 부서지면 좋으련만. 그러면 아무래도 좋으련만. 그러면 그 놈의 먹고사는 문제 따위야.
서른 너머 시인이면 어떠랴. 그걸 남들은 망나니라고 읽는다고 한들 어떠랴. 학문도 단념 못하고 연애도 단념 못하고 새로운 것을 단념 못하고 발명을 단념 못하고 착한 사람이고자 하던 일도 단념 못하면 어떠랴. 대신 그 고상한 섭생법, 이를테면 포스기 뒤편에 앉아 노트북 화면이나 뒤적거리는 것, 그 따위를 단념하면 어떠랴. 그 또한 삶일 텐데. 내 삶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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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가아닌양님의 댓글
가아닌양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왜 제목을 생존과 삶이라고 다셨나요? 하품마렵다님의 의도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하품마렵다님의 댓글의 댓글
하품마렵다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생존을 위한 자리 (편의점 알바 자리, 포스기 뒤) 에서 자기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이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붙여 보았습니다. 그 이상의 깊은 생각은 없었구요, 원글에 제목이 없는데 여긴 제목이 있어야 하다보니 뭐라고 붙일까 잠깐 생각해서 금방 떠오른 대로 붙였습니다.
미니양님의 댓글
미니양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누구 말처럼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가벼운 존재가 된다면 하고 생각한 적이 있죠. 내가 되지 않고, 누가 혹은 뭐가 되지 않아도 되는 존재. 세상 그 많은 사람중에 내가, 내가 아니어도 되는 그런 존재. 지금처럼 혹은 언젠가 처럼, 내 존재가 어떤 존재에 중첩되어 삶의 무게가 덜어지는 그런 존재.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