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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와 향찰, 어떻게 읽어야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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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3,174회 작성일 14-02-07 16:55

본문

이두와 향찰, 어떻게 읽어야하나 ?


우리 한겨레는 참으로 대단한 겨레입니다. 기원전 5000년부터 이미 두 가지의 문자, 소리글자(가림토)와 뜻글자(동북아 표의문자)를 함께 사용한 종족은 세계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삼국유사에, 심지어 삼국사기에도 한 사람의 이름 또는 한 곳의 지명도 두 가지의 문자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삼국유사에 신라 시조를 ”박혁거세(朴赫居世)라 하고 불거내임금(佛居內王) 이라고도 한다” 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국학계의 석학이신 故 양주동 박사는 한자음인 “불거내왕”을 이두식으로 읽으면, “밝그 뉘 임금=누리를 밝히는 임금” 이라고 명쾌하게 풀이하신 적이 있습니다.
또 신라 후기 임금 밑에서 국사를 총괄했던 상대등(上對等)은 당나라식 관직명이고, 이두로는 쇠뿔한(舒拂翰=角干 : 화백회의 의장) 이라 적었는데, 문무왕 시절의 김유신 대각간과 진성여왕 시절의 각간 위홍이 대표적입니다. 이 기록을 읽을 때에 후세의 사람들은 흔히 당나라 사람들의 소리값인 “서불한 또는 각간”으로 읽지만, 신라 이두의 체계로 보아 당시 신라사람들은 “쇠뿔한”이라고 읽거나 말했음이 분명합니다.
신라의 도성인 서라벌 역시 지증왕 이후 당나라 문자가 도입되면서 “金城“이라고 적었지만, 당시 신라사람들은 이를 읽거나 말할 때에는 “쇠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고려의 개경도 조선의 한양도 백성들은 “쇠울”이라고 불렀고, 그 전승으로 오늘 대한민국의 수도를 “서울”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한단고기에 부여의 학자 왕문이 이두를 만들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홍산문명시기에 만들어진 사슴발자국 글(鹿圖文)과 새발자국 글(鳥足篆)이 산동문명과 황하문명으로 전승되면서 은(殷)나라의 거북등껍질글(甲骨文)을 거쳐 진(秦)과 한(漢)의 예서와 해서로 발전되면서, 우리 겨레와는 어문체계가 다른 뜻글자로 변환됨에 따라, 이 뜻글자를 소리로 읽어줄 우리 겨레 나름의 표기법이 필요하게 된 것으로 짐작됩니다.
설총 이전의 향찰과 설총이 연구하여 체계를 확립한 이두를 살펴보면, 당시 동북아대륙의 통용문자였던 뜻글자를 황하, 오월, 파촉, 월남, 몽골, 만주, 한반도 등지의 주민들이 저마다 다르게 소리내어 읽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설총이 체계를 세운 이두 사용의 예를 들면, 가장 흔하게 쓰인 1인칭 이름씨 “나”는 “吾” 로 적고, “너”는 “汝”로 적었습니다.  우리말의 특징인 도움씨, 토씨, 꾸밈씨 등을 이두로 표기한 향가들을 보면, 뜻글자의 뜻도 살리고, 만주와 산동사람들이 뜻글자를 읽는 소리도 활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의 일연스님이 삼국유사에 올린 신라의 향가 <처용가>를 읽으면, 이두를 활용한 신라 향가의 멋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처용가는 물론 삼국유사에 함께 올려진 충담선인의 <찬기파랑가>, 월명선인의 <제망매가> 등의 향가는 우리가 아는 한문의 지식으로는 전혀 풀이할 수가 없습니다. 한문의 체계와는 전혀 다른 신라시대 사람들의 노랫말을 이두의 표기법으로 적었기 때문입니다. <처용가>를 한번 읽어보시지요. 이를 한문 그대로 "동경명기월량 야입이유행여가----"하고 소리내어 읽는 사람이 있다면, 참으로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는 조소를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두표기            신라 향가 발음        현대어 풀이
東京明期月良          셔블 발기 다래      서울 달이 밝을 때에
夜入伊遊行如可        밤드리 노니다가   밤 깊도록 놀러다니다가
入良沙寢矣見昆          드러자 자리 보곤    들어와 자려고 보니
脚烏伊四是良羅        가라리 네히어라      다리가 네 개구나.
二肐隱吾下於叱古(    둘흔 내해엇고    두 다리는 내 아내 것인데
二肐隱誰支下焉古  둘흔 뉘해언고.    두 다리는 누구 것이란 말인가
本矣吾下是如馬於隱  본대 내해다마난   본디 내 것이었지만
奪叱良乙何如爲理古  아사늘 엇디하릿고.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요.
 
<풀이> 東京=서울, 明期=밝을 때, 月良=달이, 夜入=밤깊도록, 伊遊行如可=놀러다니다가,
入良沙=들어와, 寢矣見昆=잠을 자려고 보니, 脚烏伊=다리가, 四是良羅=넷이어라,
二肐隱=두 다리는, 吾下於叱古=내 아내 것이고, 誰支下焉古=누구 것이란 말인가,
本矣=본디, 吾下是如馬於隱=내 것이지만, 奪叱良乙=앗긴 것을, 何如爲理古=어찌하리요

여기에서 보면, “~는”의 “는-ㄴ”은 “隱”으로, “~을”의 “을-ㄹ”은 “乙”로 적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향가에는 “비록~(하더라도)”를 “必于~(하더라도)“로, “없거늘“을 “無去乙“로, “~하거들랑“을 “爲去乙良“으로, “~하거나“를 “爲去乃” 로, “~하거늘“을 " "~爲去乙"로  "있거늘"을  “有去乙“로 적고 있습니다.

  특히 신라 지증왕 무렵에 한자 漢字를 받아들여, 경덕왕 때에 이르러 땅이름 표기를 한자로 적는 과정을 살펴보면, 우리말을 소리 그대로 적은 이두의 원형과 순수한 우리말 땅이름이 고려시대의 혼용 과정을 거쳐 모화사대사상이 극성을 부렸던 조선시대에 이르러 한자지명으로 굳어졌음을 잘 알수 있습니다.

신라시대 땅이름            고려시대      조선시대
텰둥글(毛乙冬非)      ⇒ 텰둥글(鐵圓)          ⇒ 철원(鐵圓)
서늘이(沙熱伊)          ⇒ 서늘이(淸風)            ⇒ 청풍(淸風)
검개(黔浦)                ⇒ 검개(金浦)              ⇒ 김포(金浦)
곰나루(熊津)            ⇒ 곰주(公州)            ⇒ 공주(公州)
엄술(牙述)                ⇒ 엄술(陰峰)              ⇒ 아산(牙山)
달구벌(達句火)          ⇒ 대구(大丘)              ⇒ 대구(大丘)
우불(于火/虞風      ) ⇒ 우을 /울(蔚)주        ⇒ 울산(蔚山)

신라 경덕왕때 우리말 지명을 모두 한자식(두 글자) 지명으로 바꿨지만, 문자의 표기형식만 바꾼 것일뿐 백성들이 말하는 소리가 바뀐 것은 아닙니다. 신라의 도성을 “金城“으로 적고 읽고 말하기는 “서라벌=쇠울=서울“이라 했던 것처럼,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도 “麻浦”를 “삼개”라고, “鷺梁津 ”을 “노들나루”라고 읽고 말했는데, 일제 조선총독부의 우리말 말살정책에 의해 왜식 한자지명으로 굳어진 것입니다.

다음은 월명선인이 죽은 누이를 애절하게 그리워하며 지으신 향가입니다.

  生死路隱                    죽음과 삶의 길은
此矣有阿米次兮伊              여기 있음에 머뭇거리고
吳隱去內如辭叱都              “나는 간다”는 말도
毛如云遺去內尼叱古            못 다하고 갔는가?
於內秋察早隱風未              어느 가을날 이른 바람에
此矣彼矣浮良落尸葉如          여기저기 떨어지는 잎새처럼
一等隱枝良出古                하나의 나뭇가지에 나고서도
去奴隱處毛冬乎丁              가는 곳을 모르겠구나
阿也彌陀刹良逢乎吾          아아, 미타찰에서 (너를)만나고자 나는
  道修良待是古如              도 닦으면서 기다리노라

<풀이> 生死路隱=생사길은, 此矣=여기, 有阿米=있으매, 次兮伊=차분히, 吳隱=나는
去內如=가내요, 辭叱都=말도, 毛如云遺=못남기고, 去內尼叱古=갔는가 ?
於內秋察=어느 가을날, 早隱風未=이른 바람에, 此矣彼矣=여기저기,
浮良落尸葉如=떨어지는 잎새처럼,一等隱枝良出古=하나의 나뭇가지에 나고서도,
去奴隱處=가는 곳, 毛冬乎丁 =모르겠구나, 阿也=아아!
彌陀刹(미타찰=불교용어로 아미타불이 계신 극락세계를 말함)
彌陀刹良逢乎吾=미타찰에서 만나지고자 부르며 나는, 道修良=도 닦으면서,
待是古如=기다리노라.

<글쓴이 풀이> 일연스님이 삼국유사에서 충담사(忠談師),월명사(月明師)라 하신 어른들을 불교계의 관행을 따르지 않고 “선인 仙人”이라 한 까닭은 이 두 어른들의 행적이 불교사상보다는 우리 겨레 고유의 한사상에
따른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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