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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명(知天命)의 나이와 이순(耳順)의 나이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2건 조회 1,571회 작성일 15-06-06 09:09

본문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와 이순(耳順)의 나이
 걸림 없는 如如한 삶을 살아온 선조들
 
  1905년  재독한인문화회관 건립법인을 설립한  최정식 이사장은 당시 신문지상에 발표한 취임인사를 통해 "한인문화회관의 건립이 재독한인들의 천명(天命)"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天命은 일반적으로 '하늘의 명령' 또는 '하늘이 인간에게 맡긴 사명'이라고 풀이 되지만,동양사상과 한국철학에서 말하는 '天命'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天命이란 과연 무엇일까 ?
  한국철학에서의 '命(명)'은, 한국철학의 근간(根幹)인 <天.地.人>의 삼재(三才)로 구분되어 나타난다. 즉 하늘에 있어 천하만물을 움직이게 하는 천명(天命)과, 땅에 있어 지상의 만물을 끊임없이 돌아가게 하는 운명(運命), 그리고 사람에게 있어 그가 온 곳으로 돌아갈 때까지의 시간을 일컫는 수명(壽命)으로 나누어 말한다. 이것은 命이 작용하는 데에 따라 구분한 것이지만 근본은 하나이다.
  일찍이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나는 십오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삼십에 세웠으며,사십에 미혹이 없었고,오십에 천명을 알았다. 吾十有五而志於學,三十而立,四十而不惑,五十而知天命" 고 했는데, 여기서 공자가 말하는 '天命'은 이 말이 실린 논어의 흐름으로 보아 단순히 '天命'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말한 세 가지의 命이 하나로 돌아간 근본의  命을 말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여기서 깊이 생각해야 할 점이 있다. 聖人(성인)이라고 불리워지는 공자같은 사람도 오십 년의 수양(修養)끝에야 비로소 命을 알았다고 고백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소년기에 뜻을 둔 학문을 세워 일가(一家)를 이룬 뒤 흔들림이 없는 경지를 넘어서야 비로소 命을 말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공자가 天命을 알았다고 한 것은 "六十而耳順: 나이 예순에 이르러서야 남의 말과 하늘의 소리에 따를 수가 있었다"의 전제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서 공자가 천명을 안다고 말한 것은, 천명을 공경하고 그에 순종하는  경순(敬順)의 삶을 '耳順'으로 표현하기 위한 전제였다는 말이다. 말로만 천명을 안다고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천명에 귀 기울이고 그에 따르는 행위가 실천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역사 가운데는 인간의 의지와 욕망을 극도로 억제하면서 하늘의 소리(즉 天命)를 듣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신라의 마지막 임금 김부대왕이다. 고려의 태조 왕건이 김부의 시호를 敬順이라 한 연유는 원효대사가 '금강삼매경 약소'에서 오체투지(五體投地)의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를 풀이하면서 "命에 귀의(歸依)한다 함은 命에 경순(敬順)함을 말한다.즉 마음을 다 하여하늘의 소리에 귀 기울여 공경하고 따르는 것"이라고 한데서 비롯한다.
  백제 전성기에 좌평들이 정사암에 모여 하늘에 제사 드린 후 제비뽑기로 나라의 수상(首相)을 선출한 것 역시 우리 선조들의 천명사상(天命思想)을 잘 말해 주고 있다.  경순왕의 왕권포기와 백제 정사암의 수상선출에서 우리가 의미를 부여해야 할 초점은 공동체를 위한 자기 욕심의 포기와 자기 주장과 자기 과신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사회의 모든 전쟁과 참화는 어느 한 사람 또는 한 집단이 자기의 신념,자기의 주장,자기의 욕심이 지켜져야 할 정의라고 외치면서 고집을 피우는 데서 시작한다.
  天命은 인간의 신념과 학문과 상식이 바탕을 이룬  인간의 주장을 허용하지 않는다. 오직 경순(敬順)만을 요구한다.
  하늘의 의지와 세간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흐름에 따르는 敬順의 도리를 일컬어,  이 시대의 큰 스승 대행선사는 "여여한 삶"이라고 가르치신다. 즉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슨 신념이니 학문이니 주장이니 고집이니 하는 따위의 욕심들을 한마음에 맡겨 버린 자유인의 삶을 가르치시는 것이다.
 
  장자(壯子)가 말하기를,"막혀도 명이 있음을 알고 통함도 때가 있음을 알아 어려움에 임하여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聖人의 용기이다. 知窮之有命 知通之有時 臨難而不懼 聖人之勇也" 라고 하는 것은,  하늘은 공평무사하여 누구에게나 命을 주고 있지만 사람마다 차별이 있어 어떤 이는 통하고 어떤 이는 막힘이 있을 지라도 그런 것을 염두에 두지 말고 성패화복(成敗禍福)과 궁달득실(窮達得失)의 현실적인 자신의 命을 그대로 받아들여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운명에 얽매이는 척박한 삶에서 벗어난 진정한 자유인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운명은 땀과 같은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한 번 주어진 운명은 다시는 거두어 들이지 못한다는 뜻이다.거두어질 수 없는 운명을 적극적으로 대하라는 역설의 가르침이 숨어 있는 것이다.
  즉 우리가 어떤 일의 원인을 찾을 수도 없고, 되돌릴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것을 命으로 보는 인생관인데, 사실 우리 민족은 이런 인생관에 매우 익숙해져 있다.
  "사주팔자는 못 고친다"라는 속담을 비롯해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는 놈"과 "자빠져도 가지밭에 자빠지는 년" 이라든가 "복 많은 과부는 앉아도 꼭 요강꼭지에 앉는다."라는 음담패설에 가까운 속담들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맞이하는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우리의 의지로 선택할 수도 피할 수도 없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여한 삶의 安貧樂道(안빈낙도)를 서민들의 상스러운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장자가 말하는 두려움 없는 삶이 바로 대행선사가 가르치시는 여여한 삶이며,生死에 얽매이지 않고 여여한 마음으로 전쟁터에 나선 계백장군과 이순신 장군이 바로 知天命 耳順의 본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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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올빼미님의 댓글의 댓글

올빼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원문에서 수정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계백이나 이순신은 여여한 마음으로 전쟁터에 나간게 아닙니다. 죽기로 작정하고 싸움에 나가서 장렬하게 전사하신 분들입니다.  참으로 여여하다는 말은 이 치열한 상황에 빠진 분들을 모욕하는 언사로 들립니다.  누구는 여여하고 싶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여여함은 사치입니다.

친절한시선님의 댓글의 댓글

친절한시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여담 하나. 오늘 오이로파 센터 앞 광장은 바르셀로나 팬들로 인산인해였답니다. 자투른 갈 일이 있어 그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비집고 지나가는데 그 와중에도 아프리카 타악기 세워놓고 띵띠룽띵띠룽 두드리고 앉았는 아프리카인들이 있더라구요. 10년 전에 바로 그곳에서 목청 높여 정의를 갈구하던 해바라기님이 떠오르더군요. 그 때에도 몇몇 아프리카인들은 해바라기님의 간절함에 아랑곳하지 않고 행복해 죽겠다는 듯 벙글거리며 아무 의미도 없어 들리는 타악 소리를 띵가거리고 있었어요. 저는 그 때 해바라기님 하얀 목에 굵직하게 툭 튀어 나온 파란 핏줄과 그 짜증스러운 타악기의 소음을 아직도 함께 기억하고 있답니다.

1919년 그 때 였던가요? 그 왜 빠리 만국 평화회의인가 뭐신가가 열렸었잖아요. 그 때 행사장에 Korea Pavilion 도 있었답니다. 빠리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준비했던 사람은 김규식이란 분이었습니다. 당시 임정엔 김규식이 두 명 있었는데 조소앙과 함께 유명한 공산주의자였던 김규식은 일본 학생 만세운동을 지원하고 있었지요. 당시 미국은 1차대전 승전국의 파워로 이전의 식민지들을 모두 독립 시킨 후 땅따먹기를 다시 하자는 깊은 뜻을 가진 민족자결주의(?)를 표방하던 때였죠. 이 리듬을 정확히 읽었던 예관 신규식의 상해 임정은 혼신의 힘을 다 해 외교전을 펼치고 연해주 무오 만세운동과 동경 학생 만세운동 (정말 놀라움)에 이어 드디어 조선 본토에서 3.1. 만세운동을 펼쳤거든요. 이렇게 거대한 민족 집결이 그 전에도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온 힘을 다 모았으나 이렇다 할 증표를 남기지 못하고 허망하게 무너진 것이 바로 그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한성정부 놀음 때문이었답니다. 빠리 김규식이 만국회의에 공식 전달한 성명서는 이승만을 대통령으로하는 대한민국의 독립을 주장하고 있었으나 정작 이승만은  워싱턴에 집무실을 차려 놓고 한성정부(그 존재 자체가 불분명한 일제의 괴뢰 정부로 의심됨)의 대통령을 자임하며, 조선은 스스로 독립할 힘이 없으니 강국(미국)의 도움을 받아 중립국이 되는 것이 최선이라는 공식 입장을 먼저 밝혀 놓았다 합니다. 그러니 빠리측에서는 애매한 김규식보다 쁘레지던트 승만리의 친필 서한이 더 공신력있다 여겼고 상해임정의 외교전은 제대로 시작도 못해보고 끝나게 됩지요. 참... 구구절절한 이 비극이 21세기 이 개명천지에도 이어지고 있으니 만약 이것이 천명이라면 우리 한겨레의 문명은 저 우주 속으로 소멸하고 말 것일지요.

올빼미님의 댓글의 댓글

올빼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일제치하인 1919년에 한국관이 있었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님은 1900년 만국파리박람회의와 혼동하고 있습니다. 1919년에 파리만국평화의의에 독립탄원서를 보냈고 이것이 발각되어 탄원서에 서명한 국내사람들이 옥고를 치뤘다고 합니다. 그나저나 이승만은 우리 역사에서 많은 걸림돌이 였습니다. 천명은 없습니다. 하늘을 스스로 돕는자를 돕습니다.

올빼미님의 댓글의 댓글

올빼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천명이라는 것이 하늘의 명령이라면 무의미 하겠지만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이땅에서 나의 할일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무의미 하지는 않지요.

올빼미님의 댓글의 댓글

올빼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더이상 댓글이 달리지 않아 부득이 여기에 댓글을 답니다.  한겨레님이 말씀하시는 천명은 주어진 운명같은 것이라면 내가 생각하는 천명은 나 스스로가 만들어 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친절한시선님의 댓글의 댓글

친절한시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 그리고 1905년 무렵에 독일에도 조선인들이 꽤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조선에서는 이미 갑신정변 시절에 지금으로 따져 재무부 장관이 허 ~ 참 독일 사람이었잖아요. 인천 개항을 해 놓고 세관관리할 사람이 없어 고종이 특별 채용한 케이스인데 이 사람이 조선의 경제 전체를 주무르려고 그랬는지 화폐를 싹 바꾸고 그 때 사용할 기계로 거액의 독일산 주조기를 수입하려 그랬거든요. 안그래도 조선을 일본식 근대국가로 바꿔 놓기 위해 안달이 나 있던 급진개화파들은 이러다간 엄한 독일 사람한테 실권을 다 빼앗기겠다 싶었나봐요. 확 뒤집어 엎어 버렸죠. 비록 삼일천하였지만.

그 때 반역에 연루되어 결국 미국으로 피신 갔던 사람 중 서재필이 있고 나중에 조선으로 돌아와 배제학당에서 스무살 유아인을 가르.... 아니 이승만을 가르치게 되지요. 훗날 상해임정이 대통령으로 서재필을 선택했다면 역사가 달라졌을거에요. 많이.

올빼미님의 댓글의 댓글

올빼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만약 그때 한국이 독일식으로 개혁이 되었다면 한국은 일본을 제치고 아시아의 맹주가 되었을 것입니다.  일본도 미국을 배운것이 아니라 독일을 배워서 경제대국이 된것입니다.

친절한시선님의 댓글의 댓글

친절한시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시아의 맹주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요? 올빼미님께서 갖고 계신 역사관을 좀 더 개연성 있게 들어 보고 싶습니다.

올빼미님의 댓글의 댓글

올빼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시아 각국의 모범국가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미국의 군사력에 의지하고 미국의 눈치를 보는 국가입니다. 나의 역사관을 개연성있게 정리해보지는 않았지만 한마디로 요약해서 말씀을 드린다면 역사란 일어난 사건들을 연속적으로 기술한것으로 그것을 통해서 인류는 새롭게 발전하고 진화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waffel님의 댓글

waffel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공자와 장자가 한국철학을 대표하는 분들인가요? 공자/장자 그리고 불교 철학이 함께 뒤섞인 글로 판단됩니다. 특히 "여여"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인데, 저같은 일반인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풀어 설명해 주시면 말씀하시려는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일상에서 한자 없이도 이해되는 어휘들에 특별히 한자어를 삽입하거나 어떤 경우에는 아예 한자로만 표기하신 것은 남다른 의도의 결과로 여겨집니다.

친절한시선님의 댓글

친절한시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가지밭에 자빠지는 년과 전쟁 종결자 이순신 장군을 하나의 여여함으로 이을 수 있는 것은 과연 장자다운 스케일인가요 ^^?

제가 딱 마흔이 되던 해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젠장. 아직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겠는데 어찌 지천명까지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건 꽤 진지한 고민이었습니다. 제가 언감생심 공자님과 비교할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天命 은 너무 격차가 크잖아요.  나도 나름 똑똑한 사람이긴 하단 말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저의 이런 심정을 털어 놓았습니다. 제 이야기를 재밌게 듣고 난 친구가 눈을 꿈벅이며 조심스럽게 묻기를, "근데... 지천명은 쉰 살 아니야? 마흔은... 뭐드라....지천명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 맞다! 마흔은 불혹이다!

어찌나 마음이 편해지던지! 천명을 알기까지 시간을 좀 번 셈이죠.

길벗님의 댓글

길벗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런 글에서 항상 생각에 두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천명(天命) 이라면 사전적 의미로는 타고난 운명이나 하늘의 뜻 혹은 자연의 법칙일 것입니다. 공자가 살 그 당시에 정말 하늘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그 당시 사람들의 생각이 결코 모자라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다만 기술적 상황이 하늘의 물리적 한계를 알지 못하였을 뿐이죠. 중세 갈릴레이 이전에 나안으로 하늘을 보며 하늘의 별과 달과 해가 우리의 운명과 혹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사는 여러가지 방법들과 연관이 있었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늘은 광대한 반구에 해와 달이 번갈아 돌아가고 별은 사람과 자연의 이치를 점치는 중요한 길잡이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리스, 중국에서는 그 당시에도 어렴풋이 우리가 디디고 있는 지상이 둥글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지상을 중심으로 자연을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습니다.

1920년 대까지만 해도 하늘의 별이 별인지 은하인지도 잘 확인이 되지 않았었습니다. 허블이 윌슨 산 천문대에서 밤하늘의 별을 관찰할 때까지만 해도 우리 인간의 세계관이란 기껏해야 태양계 내와 그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반짝이는 별을 딸 수 있는 하늘의 별들이었습니다.

별이 별이 아니라 은하라는 것을 알며 지금은 130억년 전의 별을 볼 수 있는 범위까지 우리의 세계관이 넓어졌습니다. 유념해야 할 것들은 고전을 읽을 때 그때의 하늘은 지금의 하늘이 아니라는 것, 그 때에 생각한 것들의 세계관이 지금의 세계관과는 달리 무척 협소했던 것을 항상 고려해야 합니다.

오십에 지천명은 좁은 세계관의 토대에서 나온 말이겠지요. 더 넓고 더 깊고 더 좁아진 관찰의 눈으로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알 수 없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든지 하늘의 뜻이라든지 타고난 운명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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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강물님의 댓글

라인강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한겨레님 께서 독일 한인 역사를 논하시려는 것은 아니겠지만 한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한겨레님께서는 유구한 중국역사에 나오는 위인들의 좋은 말은 다 수록하셨는데 그 당시 중국역사에 거인들인  공자,맹자 또는 ... 삼국시대를 넘나들며 그 당시 역사에 나오는 인물들을 나열하셨네요.  허지만 그 당시보다는 근 시대를  살아온 모 교민대표가 언급했다는고대성어 "천명"은 아무리 생각해도 년도 표기가 잘못된 것 아닌가 합니다.  한겨레님은 애초에 모교민대표를 칭하면서 1905년 천명을 언급했다고 말씀하셨는데...  1905년에 재독한인사회가 형성되어 있었는가 의아하면서도  댓글들을 읽었습니다. 마침 어떤 분이 1905년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 하셨고 . 한겨례 님은 오타라며1995년이라고 즉시 수정하셨네요. 그런데 과연 그 모 교민대표가 1995년에 재독한인문화회관 건립위원회라는 단체 대표로 봉사하시면서 "천명"을 언급하셨나요?

한겨레님의 댓글의 댓글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995년  재독한인문화회관 건립법인이  설립되었습니다. 당시 문화회관 건립기금 모금운동을 전개하며  최정식 이사장은 당시 교포신문에 취임인사를 통해 "한인문화회관의 건립이 재독한인들의 천명(天命)"이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재독교민들의 모금과 정부의 지원으로 지금의문화회관을 매입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만 재정조달이 원활하지 않아 아직도 "재독한인들의 천명"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자원봉사 활동으로 유지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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