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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재외동포 여인의 至高한 사랑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9건 조회 1,608회 작성일 15-06-14 07:44

본문

신라시대 재외동포 여인의 至高한 사랑
그 청순한 넋(魄)이 영주 부석사의 석룡(石龍)으로 남아
 
  지금 독일 각지에 살고 있는 파독간호사들의 연령은 대부분 어느새 이순(耳順)의 경계에 이르거나 고희(古稀)에 까지 이르고 있다.  그러나 재독한인사회의 여러 모임에서 만나게 되는 전.현직 한인간호사들과 대화를 하면서 느끼는 점은 이들 한국여인들이 정신적으로는 아직도 꿈많고 질투 많은 방년(芳年)의 시기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재독한인간호협회의 끝도 없는 듯한 분쟁 상태도 그 사건의 전개 내용과 당사자들이 호소하는 심정을 들어 보면,실제의 나이는 능구렁이 담 넘어가는 식의 처세를 해야 마땅할 칠순 경계에 있으면서 마음은 아직도 샘 많고 남에게 지기 싫어하며 홀로 아름다웠던 간호학교 시절의 꽃다운 처녀성(處女城)에 머물러 있는 까닭으로 일어나는 갈등과 불화임을 알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이런 현상을 가리켜 정신연령이 성숙하지 못한 탓이라고 폄하하지만 필자는 오히려 그토록 오래까지 젊은 마음을 간직할 수 있는 청순성(淸純性)을 아끼고 싶다.
  이순(耳順)의 나이에도 꽃답기만 한  이들 재독한인간호사들을 대하면서 필자는 가끔씩 1천3백년전 신라시대의 한 재외동포 여인을 떠올리곤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영주 부석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초등학교 국사책에서부터 부석사의 무량수전이 고려시대의 건축양식을 대표하고 있다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멀리 태백산 주봉을 바라보는 봉황산 자락에 자리잡은 부석사를 구경가시는 재독동포가 있다면 고려시대의 건축기술을 보여주는 무량수전 보다는, 사찰의 경내에 있지만 아무도 안내해 주지 않는 선묘정(善妙井)과 석룡(石龍)을 찾아 1천3백년전에 살았던 한 재외동포여인의 애절하고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사랑이야기를 떠올려 보라고 권하고 싶다.
  선묘정은 석재를 다듬어 정자(井字)모양으로 쌓아 올린 우물로서 의상대사(義湘大師)가 부석사를 창건할 당시(AD 676년)에 이미 축조되었는 데 그 우물이름인 '善妙'가 바로 목숨을 바쳐 의상대사를 사랑했던 당시 재외동포사회의 한 여인의 이름이다.
  또 석룡(石龍)은 무량수전의 미타불(彌陀佛) 대좌 밑 땅속에서부터 그 머리부분이 시작되어 S자형으로 몸체를 꿈틀거리며 법당 앞뜰의 석등(石燈)과 정대석(頂戴石) 밑 땅속에 묻혀 있는 꼬리부분까지 용의 모습을 조각한 대형의 석물(石物)을 말하는 것인데,이 석룡은 의상대사와의 세속적인 사랑을 이루지 못한 선묘가 용이 되어 의상대사를 수호하다가 부석사를 지을 때에 석룡이 되어 법당을 받쳐주고 있다는 설화가 전승되어 오고 있다. 물론 땅 속에 묻혀 있는 까닭으로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부석사의 자산대장(資産臺帳)에도 버젓이 기록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의상대사는 신라불교 아니 한국불교 화엄학의 태두(泰斗)라고 일컬어지는 스님으로서 원효대사와 같은 시대에 쌍벽을 이루며 신라사회의 정신적인 기둥이 되었던 어른이다.
  화랑 출신의 용모 수려한 청년 의상이 화엄학을 배우기 위해 중국 종남산의 지엄삼장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민박을 하게된 당나라 거주 신라인의 집에는 '선묘'라고 하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이 처녀는 청년 의상에게 한 눈에 반해 버려 모든 정성을 다해 의상의 시중을 들어주며 은근히 자신의 연심(戀心)을 비추었으나 의상의 구도심(求道心)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의상은 스승을 찾아 장안 종남산으로 떠나가고 선묘는 등주의 신라방 적산법화원에서 일심으로 합장예불을 한다. 이때 선묘의 합장예불은 떠나가는 의상 앞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생생세세(生生世世) 불법(佛法)에 귀명하겠다"고 했던 약속의 이행이었는지 아니면 어린 처녀에 불과했던 여인인지라 의상대사를 다시 만나는 날이 오기를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 지성으로 빈 것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의상대사가 공부를 마치고 동방에 새로운 화엄불교를 펴기 위해 신라로 돌아가는 길은 선묘가 있는 등주를 거쳐야 했다. 합장예불을 하다가 의상대사가 귀국하기 위해 선창으로 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된 선묘는 정신없이 부두로 달려갔지만 대사가 탄 배는 이미 멀리 앞바다에 떠가고 있었다. 선묘는 대사와의 재회를 기약하며 한 바늘 한 바늘 정성을 기울여 지은 대사의 법복들이 고루 갖추어져 있는 함을 바다로 던지고 이어 자신도 바닷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순간 선묘는 한 마리 용이 되어 대사가 탄 배를 뒤쫓으며 황해의 거친 파도로부터 대사의 안전을 지켰고,귀국한 후에도 의상대사의 포교활동을 수호했다.
  의상대사가 양양 낙산사를 창건할 때에는 지금 의상대 밑의 관음굴에 머물고 있었는데 이 때에도 선묘는 관음굴 밑에 용트림치는 바닷물이 드나드는 수십길의 동굴을 파고 그 안에 살면서 대사를 수호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들이 비록 설화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낙산사를 짓기 위해 이 관음굴에서 의상대사가 지은 <白花道場發願文 백화도량발원문>에서 선묘의 세속적인 사랑을 받아줄 수 없었던 대사의 애틋한 마음을 느까는 필자로서는, 1천3백년전에 살았던 한 재외동포여인의 사랑이야기가 오늘의 사건으로 다가온다. 
  "나의 전심전령(全心全靈)이 당신의 마음 속에 살아있고, 당신 또한 내 마음 속에 항상 같이 있어서 떠날 줄이 없게 해 주시옵소서"
  "이 몸이 가루가 되고 모진 업보가 이 몸으로 더불어 다하게 될 때, 천수천안(千手千眼) 당신의 자비의 손길이 이 몸을 건져내어 당신의 곁으로 인도해 주시옵소서"
  "옛날에 당신이 미타불 앞에 무릎을 꿇었듯이 이 몸은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생생세세의 귀명을 맹세하나이다"
  이 발원문은 낙산사 창건을 위해 의상대사가 지었지만 그 내용은 대사를 향한 선묘의 애절한 마음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일본불교에서조차 화엄종의 수호여신으로 숭상되고 있는 선묘에게서 필자는 재독한인간호사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한국여인의 본래 모습을 발견하기에 이를 소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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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올빼미님의 댓글

올빼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모든 것을 좋게만 보시려는 한겨레님의 마음을 높이 존경합니다만 저같은 속인의 눈으로 보면 선묘는 남자에 집착하여 정신과 혼이 나가 자살한 여자로 보입니다. 그리고 재독간호협회의 어르신들이 서로를 용납하지못하고 지금까지 불협화음을 내는것에 대해서는 그분들이 이곳에 거주하는 후배세대들에게 본을 보이지 못함을 부끄럽게 느끼셔야 할것이라고 생각이듭니다. 재독간호협회의 회의를 견습기자로 직접취재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당시의 한치의 양보가 없었음에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길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재독간호협회의 모든 회원은 서로 용서와 화해를 청해서 젊은 후학들에게 본을 보여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 추천 1

sonnenblumen님의 댓글

sonnenblumen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선묘라는 여인과 재독한인간호사들과 무슨 연관성이 있을까... 싶습니다.
재독한인간호사들에 대해서 젊은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청순성이라고 표현하셨고 이것으로 선묘와 접점이 있다고 보시는 것 같은데 글쎄요... 저 같은 사람에게는 별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선묘에게서 발견하셨다는 한국 여인의 본래 모습이라는 것도 뭔지 궁금한데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선묘라는 여인을 남자에 집착하여 정신과 혼이 나가 자살한 여인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그가 그녀의 맘을 얼마나 흔들었길래 저렇게까지 사랑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올빼미님의 댓글의 댓글

올빼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가 그녀의 맘을 도대체 얼마나 흔들었기에 저렇게 목숨마져 바다에 던졌을까요??????????? 
이야기속의 의상은 절대로 선묘의 마음을 흔들지 않았고 선묘의 짝사랑이었습니다만 이 사건이 진짜 일어났다면 선묘가가 의상을 홀로 집착을 하여 정신과 혼이 나가 자살한것이던지 의상이란 작자가 선묘를 농락하고 떠나버려 절망한 나머지 바다에 뛰어 든것이던지 그도 저도 아니면 바다에 실족사한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만약 님의 딸이 선묘였다면 님은 선묘를 애해하시겠습니까??

sonnenblumen님의 댓글의 댓글

sonnenblumen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사랑이라는 것이 정신과 혼을 빼앗기는 일 아니겠습니까?
만약 제 딸이 선묘였고 그래서 저렇게 허무하게 죽게 되었다면 이성적이지 못하고 심약한 딸로 키운 저를 탓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랑에 눈이 먼 당사자를 부모인들 말릴 수 있겠습니까?

올빼미님의 댓글의 댓글

올빼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남자가 떠나갔다고 죽는 것은 참으로 나약하기 그지 없는 생각입니다. 설사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고 할지라도 따라죽은 것은 아니다 싶습니다. 우리의 딸들을 선묘처럼 나약하게 길러서는 안됩니다.  다음배를 타고 쫒아가던지 죽기는 왜 죽습니까? 더군다나 스님이나 신부님을 사랑한다고 쫒아다니는 것은 스토킹입니다.

sonnenblumen님의 댓글의 댓글

sonnenblumen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만약에 제 딸이 승려를 사랑한다고 하면 말리겠죠, 선묘처럼 합장 예불 드리지 못하게 하겠죠. 그러나 부모로서 딸의 그 홀로 그리워하는 마음을 돌릴 수 없다면... 그 사랑때문에 딸아이가 죽을 지경이 된다면... 그를 따라가도록 했겠죠. 따라가서 부엌지기라도 하면서 그의 곁에서 그를 지켜보면서 살아보라고...

한겨레님의 댓글의 댓글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만약  선묘가 제 딸이었다면, 그 절절한 짝사랑을 이해했으ㄹ 겁니다. 제가 젊은 시절에 절절한 짝사랑 때문에 자살기도를 한 적이 있어거든요 . 그 심정 누구보다도 잘 알지요

올빼미님의 댓글의 댓글

올빼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래서 님이 자살에 성공했다면 님의 딸인들 존재하겠습니까?? 심정을 이해한다고요? 무슨 심정을 이해하시는지 궁금하군요. 짝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간다고 죽음을 택한것을 이해한다는 님을 저는 이해할수 없습니다.

한겨레님의 댓글의 댓글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Sonnenbluben 님, 한국 여인의 본래 모습이라면 저는 신라 여인 미실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신라 진흥왕 때 원화(源花)로서 화랑의 우두머리가 되어 왕을 호위하는 역할을 담 당했고, 사다함과 의 애절한 사랑이야기에 뒤이은 자유분방한 남성 편력을 하며 3대 왕위에 걸쳐서 서라벌 왕권을 치마 폭 안에 휘어 감았던 여걸 미실의 이야기를 아시는지요 ? 저는 이 미실을 한국여인 본연의 모습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미실과 선묘의 공통점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목적에 대한 적극적인 행위, 죽음까지도 블사하는 목적 추구를 향한 좌절과 실망을 넘어서는 행위에 방점을 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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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님의 댓글의 댓글

올빼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한겨레님 님에게 딴지를 걸려는 것은 아닌데 님을 글을 보면 자꾸 딴지심이 발동하네요. 죄송합니다.  님은 극과 극을 연결하시고 한국 여인의 본래 모습이라 우기시는군요. 앞서 논란이 되었던 한국여성의 또다른 일반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남성을 휘어잡고 남성을 농락하는것도 남성이 떠났다고 자살하는것도 한국여성의 본래 모습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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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pigone님의 댓글

anpigon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사랑에 빠져서 목숨까지 갖다바친 일이 한국에만 국한된 일일까요? 한겨례님께서 "한국 여인의 본래의 모습"이라고 말씀하셔서 그러는건데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시작하여 어렴풋이 기억하건데 테스도 그렇고 또 뭐가 있는지....  아무튼 전세계적으로 넘쳐나는 흔한 이야기다보니 기억도 잘 안나는군요.  '사랑땜에 죽고 사는' 사건은 호르몬이 넘치는 젊은 이들의 국제적 현상입니다.

저는 재독간호사들과 연관도 없고 그들의 모임에 가본 적도 없으므로 말씀드리기가 주저됩니다만, 그래도 보기에 딱한 것은  청순(?)을 간직한 탓에 "꿈많고... 질투하고 지기 싫어하"는 그들에게 도대체 어떤 미래가 있는지입니다. 통계자료는 없지만 최소한 저의 주변에 간호사가 된 2세는 단 한명도 안보이거든요. 그들이 숨을 거두는 순간에 끝장이 날,  미래도 없는 단체 회원들.  끝까지 그렇게 질투하고 지기 싫어하다가 돌아가실 예정인지?
한겨레님이 그들을 왠지 "귀엽게" 보시는 것으로 느껴지는데, 저의 삐딱함인지 뭔지가 거부반응을 보이는군요.

한겨레님의 댓글의 댓글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예, 아마도 끝까지 그렇게 질투하고 지기 싫어하다가 돌아가실 것 같습니다. 제가 누님으로 모시고 있는 일세 살의 파독간호사 출신 교민 원로 한 분은 한국을 떠나 올 무렵인 스무 살 전후의 정서를 지금도 그대로 간직하시고, 이웃들에 대해 시샘하고, 질투하고, 지기 실어서 때로는 험한 욕설도 퍼붓지만 한편으로는 정 많고 감성이 풍부하여 일흔의 나이에 사랑의 시를 써서 한국문단에 등단까지 하는 장한 일을 해 냈답니다.

sonnenblumen님의 댓글의 댓글

sonnenblumen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샘하고 질투하고 험한 욕설 퍼붓는 것
정 많고 감성이 풍부하여 일흔에 사랑 시로 등단하는 것
이런 것들은 그냥 한 사람의 성격입니다.
파독 간호사 분들께서 독일에 갓 올 당시의, 스무 살 전후의 정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그 연세에도 시샘하고 질투하고 험한 욕설 퍼붓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는 곳곳에 스물이어도 시샘하거나 질투하지 않는 아가씨들 제법 많고 일흔이 넘어도 어른답지 못하신 분들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화합할 줄 모르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분들을 너무 미화시키려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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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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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합할 줄 모르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분들을 모두 나쁜 사람으로 단정하고, 공동체의 발전을 저해하는 사람이라고 매도한다면,  "사람 살  맛 나지않는 삭막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
독일에 갓 올 당시의, 스무 살 전후의 정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그 연세에도 시샘하고 질투하고 험한 욕설 퍼붓는 고희의 여인네들을 저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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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nenblumen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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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합할 줄 모르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분들을 모두 나쁜 사람으로 단정'짓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따로 있습니까? 좋은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면 좋은 사람이고 나쁜 생각을 하고 행동하면 나쁜 사람이지 않습니까? 한겨레님은 좋은 사람입니까, 나쁜 사람입니까? 좋은 사람일 때도 있고 나쁜 사람일 때도 있지 않습니까? 저는 좋은 사람일 것 같습니까, 나쁜 사람일 것 같습니까? 여기 본문에 언급된 파독 간호사분들이 화합할 줄 모르고 자기 주장만 내세운다고 해서 그 분들을 모두 나쁜 사람으로 누가 단정지었습니까? 저는 아무도 그 분들을 나쁜 사람으로 단정짓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렇게 화합할 줄 모르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겠지요. 그리고 '공동체의 발전을 저해하는 사람'이라고 매도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문제가 될만큼 또는 후배들이 보기에 본이 되지 않을 정도로 '화합할 줄 모르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분들'이라면 '공동체의 발전을 저해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스물 살 전후의 정서를 그대로 간직하고' 계신 분들을, '그 연세에도 시샘하고 질투하고 험한 욕설 퍼붓는 고희의 여인네들을' 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은 한겨레님의 마음인 것이고,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을 미화하시는 것이 맞지 않습니까?
저는 한겨레님께서 그 분들을 사랑하시는 것이 옳지 않은 일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분들을 나쁜 사람이라고 단정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저는 파독간호사협회의 일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지만, 님께서 언급하신 것으로 추측컨대, 화합할 줄 모르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것에 대해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님께서 그 올바르지 않은 행동을 청순성이라는 표현을 통해 정당화(?)시키려는 것 같아서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anpigone님의 댓글

anpigon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한가지 외람된 부탁을 드려도 된다면, 저같은 2세들을 위해 한문을 쓰시더래도 한글 곁에 괄호안에 따로 써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저는 님의 글을 이해하기 위하여 한문을 한글로 옮기는 작업을 별도로 하곤 하는데요.. 뭐 그렇게 해야 공부되는 거라고 꾸짖으신다면  네... 맞는 말씀이기는 합니다만... 님의 글을 '어렵다, 복잡하다' 하면서 무시하고 넘어갈 다른 2세들도 있을 것 같아서요..

또리님의 댓글의 댓글

또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옙!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어요. 안피고네 님 글 언제 올라오나요!!!
일단 글 올리시면 혼자 공부를 마아니 한 뒤 딴죽 걸 준비해볼래요~~

친절한시선님의 댓글

친절한시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냥 옛날에 그런 일이 있었다하고 들려 주시는 이야기면 참 재밌을 것입니다. 거기다가 무슨 협회에서 알력싸움하는 이순 넘은 여성들의 처녀성(?) 같은 것을 갖다 붙이시고 그것이 화엄종 수호신의 심성이라며 들이미시니 베리자투에서 함께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정말 알찬 빡침이 생기네요. 한겨레님 주변적 인간관계와 사적 감정이 추측되는데요, 솔직하지 못한 지식인이 '너희들은 알지 못할 심오한 역사적 통찰'로 안하무인하는 태도로, 저희를 이렇게 무시하시나요.

어차피 여여하실테니 저의 건방진 태도에도 허허로우시겠죠라고 비꼬아봅니다.

  • 추천 4

한겨레님의 댓글의 댓글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찬시님, 오랬만입니다.반갑습니다 ! 그저  점점 총기를 잃어가고  있는 늙은이의 무위자연(無僞自然) 타령이라 여기시고 여여한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

친절한시선님의 댓글의 댓글

친절한시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마음을 열었다가 상처만 받은 상태입니다.
늙은이의 타령이라 여길 것이면 처음부터 무엇하러 당신의 이름을 불렀겠습니까.

  • 추천 1

anpigone님의 댓글

anpigon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의 댓글이 중간에 껴있어서 한겨례님이 아직 못보신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다시금 부탁드립니다.
한겨레님, 여걸 미실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국여인 본연의 모습"이라 하셨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목적에 대한 적극적인 행위, 죽음까지도 블사하는 목적 추구를 향한 좌절과 실망을 넘어서는 행위"에 대해 듣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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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세기(花郞世紀)>라는 책이 있다. 1989년 발췌본이, 1995년 필사본(연구자들은 이 책을 모본(母本)이라 부른다)이 발견되어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이 책은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김대문의 저서라고 언급만 되어 있을 뿐 현재까지 전해지지는 않는 책이었다. 그래서 1400여년이 지나 등장한 <화랑세기>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진위논쟁에 휘말린다. 발견된 <화랑세기>를 위작이라 주장하는 쪽의 학자들은 이 작품을 필사자인 박창화 선생의 한문 창작 소설로 본다. 다른 쪽의 연구자들은 박창화 선생이 직접 원본을 보고 필사했다고 주장한다. 박선생은 해방 직전 일본 궁내성의 도서료에 근무했기 때문이다. 이는 쉽게 결론이 날 논쟁이 아니다. 결정적인 관련 유물이나 유적이 새로 발굴되거나, 일본 궁내성에 있을지도 모를 원본이 등장해야만 끝날 논쟁이다.여하튼, 681~687년 경 신라 귀족 김대문에 의해 저술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화랑세기>는 문노와 김유신, 김춘추 등 신라 화랑의 우두머리인 풍월주 32명의 족보인 세계(世系)를 다루고 있다. 정식 혼인관계와 정식 출생자들의 족보뿐만이 아니다. 책은 풍월주를 비롯한 화랑들이 속한 지배계층들을 설명하기 위한 모든 관계, 즉 왕과 왕비, 후궁들, 화랑의 아내들과 연인들 사이에서 맺어지는 정식 혼인관계와 비공식 사통((私通) 관계의 이야기를, 그리고 남녀뿐만 아니라 남남과 근친 사이에서도 벌어지는 온갖 성관계와 출생 이야기를 세세히 담고 있다. 그렇기에 이런 충격적인 신라인의 성 풍속 내용 자체가 위작이라는 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은 무려 400 명이 넘는다. 그런데 남성 풍월주 32명의 전기 형식으로 구성된 전체에 책서 가장 많이 등장하며 관계의 중심에 있는 이름은 뜻밖에 유명 화랑이 아니라 한 여성의 이름이다. 또한 그 이름은 <화랑세기>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매력적인 인물의 이름이기도 하면서 우리에게 가장 큰 충격을 주는 인물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 이름은 미실(美室), 아름다운 집.미실은 풍월주가 아니었기에 정식으로 <화랑세기>의 전기에 자신의 이름을 달고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화랑세기> 전 편에 걸쳐 다른 풍월주들의 전기에 계속 등장하고 있다. 1세 풍월주 위화랑의 증손녀인 미실은 10세 풍월주인 미생의 누나였다. 5세 풍월주인 사다함과 7세 풍월주인 설화랑(혹은 설원랑)은 그녀의 연인이었으며 6세 풍월주 세종은 그녀의 남편이었다. 11세 풍월주인 하종은 미실과 남편 세종 사이에 태어난 그녀의 아들이었고, 16세 풍월주 보종은 미실과 연인 설화랑 사이에 태어난 그녀의 아들이었다. 15세 풍월주 김유신과 18세 풍월주 김춘추는 각각 미실의 손녀 사위였다. 또 미실은 8세 풍월주 문노, 12세 풍월주 보리공과 정치적으로 대립한 것으로도 <화랑세기>에 기록되어 있다. 자,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과연 이 여인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미실은 <화랑세기>에만 등장하는 인물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당시 신라에는 남자로 계승되는 성골 진골 등의 골품 외에 여자에서 여자로 이어지는 인통(姻統)이란 것이 있었다. 인통에 속한 여자들은 신라 왕실 남성들의 결혼 상대가 되거나 색공(色供), 즉 정식 혼인 외 성적 쾌락의 상대가 되어 지위를 획득했다. 446~550년경에 대원신통의 일원으로 태어난 미실은 외할머니 옥진의 지도 아래 진골정통에 맞서 가문을 일으켜야할 자신의 역할을 잘 알고 있었다. 옥진과 미실에게 성행위란 곧 ‘도’였다.





옥진이 “이 아이는 우리의 도를 일으킬 만하다”말하고 좌우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며 교태를 부리는 방법과 가무를 가르쳤다. 태후의 명으로 세종의 궁으로 들어가려 할 때 옥진이 근심하여 말하기를 “내가 너를 가르친 것은 장차 너의 숙모의 잉첩이 되게 하려는 것이지 어찌 전군을 섬기라고 한 것이겠느냐?” 하였다. 미실이 “빈첩의 도는 색공에 있는데 어찌 진흥제 를 받들지 못하겠습니까?”하였다. 옥진은 크게 기뻐하여 등을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이 아이는 족히 도를 말하니 나는 근심이 없다”하였다.
-이종욱 역주 <화랑세기> 122쪽





진흥왕의 동생인 세종 전군에게 색공을 바친 미실은 시어머니인 지소태후의 미움을 사서 궁 밖으로 쫓겨 나간다. 이때 화랑 사다함을 만나 색공이 아닌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된다. 세종은 미실을 못 잊어 다시 궁으로 부른다. 이에 미실은 후궁이 아닌 정비(正妃)의 자리를 요구한다. 사랑에 눈먼 세종은 정비를 버리고 미실의 요구를 들어주지만 미실은 진흥왕의 후궁이 되자 불편한 관계가 된 남편 세종을 변방으로 보내 버린다. 이후 미실은 진흥왕, 진지왕, 진평왕 3대에 걸쳐 색공을 하는 후궁으로서 30여 년간 신라 왕실의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미실은 이모이자 진흥왕의 정비인 사도왕후와 손잡고 진지왕 폐위와 진평왕 옹립을 주도하며 자신이 왕비에 즉위하려 했지만 여론이 좋지 않아 실패한다. 그 사이 왕 외에 화랑 등 다른 남자들과도 자유로운 성생활을 즐기며 4남 4녀를 낳았다.미실이 30년간 늘 탄탄대로로 권력을 행사한 것만은 아니다. 미실은 진흥왕의 장자인 동륜 태자의 죽음과 관련한 성적 스캔들에 휘말려 궁을 나오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곧 다시 왕의 총애와 예전의 권력을 회복한다. 친동생 미생과도 관계한 점 등 당시 기준으로도 지나치게 방탕했던 점 때문에 공격을 받자 화랑 조직을 개편하여 자신이 화랑들의 우두머리인 원화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위기를 타개해가는 과정을 보면 그녀가 단순히 미모와 성적 능력만으로 성공한 여자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왕이 업무를 볼 때 미실이 문서를 보며 옆에서 모셨다는 점과 그 어려운 향찰로 향가까지 지었다는 점, 죽기 전에 수기 700권을 남겼다는 점으로 볼 때 그녀는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존재였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진흥제가 사도왕후에게 말하기를 “너의 조카는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미녀인데 어찌 너의 잉첩이 되지 못하고 다른 데로 시집갔는가?”하였다. 사도왕후는 이에 미실을 3대(부ㆍ자ㆍ손)을 모시는 자리로 진흥제에게 추천하였다. (중략) 전주(미실)는 문장을 잘 지었다. 진흥제가 조정에 나아가 업무를 볼 때 전주가 옆에서 모셨다. 문서를 보고 참견하여 그것이 옳은지를 (다루었기에) 조야의 권세가 옥진궁으로 돌아갔다. 대원신통이 다시 성하게 일어났다.
-이종욱 역주 <화랑세기> 123쪽





이정도로 당시 신라에서 미실이 큰 권력을 행사했다면 미실은 고대 삼국역사에 매우 중요하게 기록되어야 한다. 그러나 미실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미실과 관계있는 다른 인물들은 위의 세 문헌에 모두 등장하는 반면, 미실은 오로지 <화랑세기>에만 등장할 뿐이다. 그 이유가 뭘까? 이런 미실의 존재가 바로 <화랑세기>가 위작이며 소설이라는 증거가 될까? 혹시 당대의 신라인 김대문이 신라 당시에 기록한 문헌에는 미실이 등장하지만 후대에 고려인 김부식과 일연이 기록한 문헌에는 등장하지 않는 점에 숨은 답이 있지 않을까? 즉 미실이란 존재는 후대의 유교적 도덕률로는 재단할 수 없는, 특수한 성윤리와 풍습을 가졌던 당시 신라 사회의 맥락에서만 이름이 남겨지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을까?

서양이건 동양이건 크리스트교와 유교의 승리 이전 고대사를 보면 성 풍습이 지금과 매우 달랐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대 삼국 중에서도 특히 신라가 그랬음을 알 수 있다. 그 증거로 1974년, 신라 13대왕 미추왕릉 지구에서 발굴되어 1978년에 국보 제195호로 지정된 ‘토우 장식 장경호'에 부착된 토우의 예를 들 수 있다. 이 흙항아리에는 후배위로 성교하는 남녀 한 쌍의 토우가 부착되어 있는데 이를 왕릉의 부장품으로 넣었다는 데에서 신라인의 성의식과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이 외에도 박물관에 가 보면 남녀의 성기를 과장하거나 성행위의 체위를 표현한 신라의 토우가 얼마든지 더 있다. 또 문헌 자료도 있다. 유학자 김부식이 저술한 <삼국사기>에 옥문곡에 숨은 백제 군사를 소탕하는 고사가 등장하는데, 이야기 속 선덕여왕은 남자 중신들 앞에서 스스럼없이 성교와 남녀의 성기를 언급하고 있으며 그 분위기는 매우 자연스럽다. 이런 예를 보아 당시 신라인의 성 풍속은 지금과 매우 달랐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의 윤리도덕의 잣대를 가지고 <화랑세기>와 미실을 재단하려 들면 안 된다. 아무리 낯 뜨거워도 이 역시 우리의 역사이고 아무리 충격적이어도 미실 역시 우리의 선조이다.물론 <화랑세기>가 위작이어서 우리의 미실이 박창화 선생의 창작 속 인물이라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미실이 허구의 인물이라 할지라도 <화랑세기> 속 고대 신라 여성 미실의 이야기를 읽는 현대인인 우리는 그녀의 거침없는 삶과 욕망 추구에 어느 정도 문화 충격을 받게 되기 마련이다. 그녀에겐 충격적인 성적 에피소드가 얼마든지 있다. 남편이 있는 몸으로 스스로 이모의 남자인 진흥왕의 후궁이 되는 것, 진흥ㆍ진지ㆍ진평 등 3대에 걸쳐 왕의 후궁이 되는 것, 30대에 10대인 진평왕을 몸으로 성교육 시키는 것, 자신의 딸과 동시에 한 왕인 진평왕에게 색공하여 각각 딸을 낳는 것, 진흥왕이 병에 걸려 성불능이 되자 이모 사도왕후를 위로하기 위해 남편 세종을 사도왕후와 동침하게 권하는 것, 친동생 미생과 관계 갖는 것… 등등 말이다.그러나 우리가 미실, 그녀의 삶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는 이런 말초적인 성 관계 에피소드보다 다른 곳에 있다고 난 생각한다. 도덕적인 면이 비난받아 마땅하다면 미실의 상대 남자들도 같이 받아야 한다. 즉 제수씨이자 처조카를 후궁으로 삼은 진흥왕도, 미실 모녀와 동시에 동침한 진평왕도 같이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대개 권력자 남성의 성생활은 비난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문제는 도덕이나 문란한 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또 당시 신라에는 임신한 처(妻)를 상관에게 바쳐 이득을 꾀하는 마복자(磨腹子) 제도라든가 남성의 성 상대인 용양신(龍陽臣) 제도 등 남성과 관련되어 현재의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 못할 성 풍습도 많았다. 사회 자체가 그랬기에 미실 만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리고 역사를 살펴보면, 미실 정도의 성편력을 행한 여성은 얼마든지 더 있다. 색과 성을 무기로 권력자 남성 옆에서 방자하게 굴거나 친정 세력을 동원하여 권력을 행사한 여성의 예도 많다. 그런데 왜 우리는 유독 미실의 경우만 더 불편한 것일까? 왜 <화랑세기>를 위작으로 보고 싶을 정도로 책 전체에 걸쳐 미실이란 존재가 가장 걸리는 것일까?





설원은 양위를 하고 미실을 따라 영흥사로 갔다. (중략) 그때 미실궁주가 이상한 병에 걸려 여러 달 동안 일어나지 못하였다. 공이 밤낮으로 옆에서 모셨다. 미실의 병을 자신이 대신하겠다고 밤에는 반드시 기도하였다. 마침내 그 병을 대신하였다. 미실이 일어나서 슬퍼하여 자신의 속옷을 함께 넣어 장사를 지내며, “나도 또한 오래지 않아 그대를 따라 하늘에 갈 것이다”하였다. 그 때 나이가 58세였다.
-이종욱 역주 <화랑세기> 89쪽





미실은 나이 들자 색공과 정치일선에서 은퇴하고 영흥사에 거주한다. 애인 설원랑(설화랑)이 그녀를 따라 온다. 미실이 병에 걸리자 설원랑은 지극한 사랑으로 그녀를 간호하다 먼저 죽는다. 미실 역시 58세의 나이로 설원랑의 뒤를 따른다. 이것이 <화랑세기>에 서술된 미실의 최후이다. 어떤가? 미실의 성 편력 부분보다 이 부분이 더 납득하기 어렵지 않은가?미모와 성적 매력으로 권력자를 사로잡아 베갯머리 송사로 권력을 휘두른 여성으로는 장희빈이나 정난정도 있다. 높은 신분 출신으로 상대 남자들을 가리지 않고 친척 관계의 남성들과도 성을 즐긴 여자로는 어우동도 있다. 미모로 높은 지위과 권력을 누린 외국 여성들을 찾아보면 양귀비나 앤 불린도 있다. 이들과 미실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앞서의 여인들은 모두 비극적으로 죽었다. 심지어 장희빈과 앤 불린은 믿고 사랑하던 남편인 왕에 의해 처형당했다. 하지만 미실은 끝까지 사랑받다가 자연사했다. 사람들이 미실의 삶을 볼 때 가장 불편한 점이 바로 이 점이 아닐까? 희대의 악녀이자 음녀인데, 권선징악의 규칙이 적용되지 않고 누릴 것 다 누리고 받을 사랑 다 받고 살다가 해피엔딩으로 역사서에 기록된 점. 미실, 그녀의 삶을 읽는 후대의 우리들은 그녀의 방탕과 권력욕보다 그렇게 살던 그녀가 아무 천벌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놀랍고 불편한 것 아닐까? 그래서 미실을 등장시킨 현대 드라마 <선덕 여왕>에서는 미실을 자살로 처리한 것이 아닐까? 그녀의 해피엔딩, 우리가 받아들이기엔 너무도 불편했기에.

<화랑세기>의 진위를 떠나 이미 미실은 소설로 드라마로 생명력을 얻은 대중적 캐릭터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미실, 그녀의 존재와 삶이 우리에게 불편한 이유를 따져 보는 것은 꽤 의미있는 작업이다. 미실, 과연 그녀는 어떤 기준에서 악녀이고 음녀인가?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건가? 사람들은 왜 마음껏 성과 욕망을 추구한 여성은 악녀이므로 반드시 파멸해야 한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미실 시대의 성도덕이 현대와 달라 불편함을 느낀다고 그 시대의 기록물이 위조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왜 민족의 역사는 항상 현대 후손의 시각에서 바람직하고 이로운 것만 정사(正史)로 채택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화랑세기> 속에 그려진 우리의 고대 신라사와 미실이 우리에게 불편한 이유, 바로 거기에 민족사와 여성을 보는 우리의 편견이 존재한다. 그리고 여자인 우리의 세상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 역시 존재한다.여자는 언제 여자가 되는가. 미실이 묻는다. 나는 머뭇거린다. 내 답을 기다리지 않고 미실은 말한다. 여자의 생식기를 갖고 태어난 그 순간부터 여자인 것은 아니다. 자신이 사람을 받아들일 수도 내보낼 수도 있는 열린 몸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여자는 여자가 된다. 그러니 여자인 자신의 몸을 인정하고 사랑할 것. 그 과정에서 남의 시선과 징죄를 지레 상상하고 겁먹지 말 것. 세상은 나쁜 여자가 받을 벌을 말하지만 그런 것은 없다. 끝까지 자신을 잃지 말고 너가 갈 길을 가서 원하는 것을 얻으라. 미실, 그녀가 계속 말한다.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여자가 파멸한다는 것은 역사의 루머일 뿐이다. 언제까지나 첫 생리혈을 본 어리버리한 소녀의 두려움으로 세상의 시선을 겁내며 움추려 살 수는 없다. 그러니 눈을 크게 뜨고 나 미실, 이 여자를 보라. 너의 사랑과 욕망을 보라.

  • 추천 3

anpigone님의 댓글의 댓글

anpigon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한겨레님,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실은 그러니까 과거 한국의 femme fatale 이군요. 지성과 미모를 겸비하고 거침없이 욕망을 드러내는 악녀이자 음녀...

한겨레님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목적에 대한 적극적인 행위, 죽음까지도 블사하는 목적 추구를 향한 좌절과 실망을 넘어서는 행위"를 말씀하셨는데, 저는 미실의 목적추구가 무엇이였을까 궁금합니다. 오로지 쾌락추구와 섹스로 인한 신라왕실의 권력장악 뿐이였을까요?

뭐 30년간의 권력장악도 사실상 대단한 능력이지요. 하여튼 대단합니다. 올려주신 글에서 제가 정확히 센거라면 총 7명의 남자들의 부인내지는 애인이였다는건데.. 게다가 8명의 아이들을 낳았고요. 8번의 출산이라뇨!!! 우와~ 존경심! 그렇게 하고도 죽을 때까지 사랑 받았다는 점이 유교적 사고로 볼 때에는 충격적, 불편함을 넘어서 거부감들만도 합니다. 

미실을 보니까 흡혈귀가 생각나요. 저는 드라큘라 스토리의 상징적인 요소들을 매우 좋아하는데요, 고독과 성에 대한 무지와 두려움에 쩔어있던 빅토리아 시절의 여성들이 흡혈귀가 되자 드디어 해방된 점. 스스로 남자들의 피를 맘껏 뽑아먹고 신바람나게 사는 능동적 존재들로 변하는 과정을 볼 때 항상 그 신선함에 하하하 ~ 웃게 되거든요...

뭐 남자도 많은데 외로운 이모에게 하필이면 내 남편을 갖다 바친(?)다거나 친동생과 굳이 침대에 들어가는 오버액션은 필요없는거 같구용~  하지만 대체로 그녀는 매우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매력이란게 지성, 감성, 동물성, 유머감각의 적당한 혼합비율에 따르는거겠지요..?

  • 추천 1

하품마렵다님의 댓글의 댓글

하품마렵다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기록된 인류역사는 이제 수천년... 지금과 같은 성에대한 금기 관념이 생긴 것은 또 길게 잡아도 천 년 안쪽. 앞으로 성에대한 관념이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이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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