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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시 유럽에서의 조국광복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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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649회 작성일 15-07-08 08:59

본문


재독한인문화회관에는 고 이미륵 박사의 흉상이 안치되어 있다. 이미륵기념사업회(회장 정규화 교수)가 제작한 이 흉상은 서울 국립도서관과 베를린 대사관과 프랑크푸르트 총영사관에 한 점 씩 있고, 뮌헨에 소재한 이미륵기념사업회 송준근 회장에게 온 것을 영구 전시를 위해 한인문화회관에 기증한 것이다.
 
한인문회회관에서는 2012년 3월 10일, (사진 왼쪽부터) 고창원 한인문화회관 관장, 송준근 뮌헨 이미륵 박사 기념사업회 회장, 박종범 유럽한인총연합회 회장, 최병호 재독한인총연합회 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막식을 가진 바 있다.
흉상 뒤에는 이미륵 박사의 초상과 더불어 1990년 12월 26일 대한민국 대통령 노태우가 추서한 건국훈장 애족장의 사본이 걸려 있다. 본명인 이의경으로 표기되어 있는 훈장증에는 “우리나라 독립운동과 국가발전에 이바지한 바 크므로---“라는 훈장 추서의 까닭이 적혀 있지만, 막상 이미륵 박사의 자주독립 활동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독일에 유학한 독문학자들에 의해 독일문단에서 독일어로 우리나라를 소재로 한 소설을 발표한 탁월한 문학가로서 그 이름이 우리나라에 알려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실상 유럽 최초의 한인단체인 “유덕고려학우회(留德高麗學友會)“를 조직하여 제국주의 일본의 실체와 만행을 세계만방에 알리는 일을 주도적으로 펼쳐나간 조국광복운동의 실체를 규명해야 할 의무가 후학들에게 있음을 말하고 싶다.

일제 강점기에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에 거주하는 한인 동포들이 노동자와 유학생 조직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항일 독립운동을 펼친 사실은,보수 우익이 주도해온 사학계에 의해 철저하게 외면되고 묻혀져 왔다. 그런 맥락에서 지난 2006년 8월 11일, 백범 기념관에서 열린 <유럽지역에서의 아시아 식민지 해방운동>이라는 주제의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 홍선표 책임연구원이 발표한 내용은 그 역사적 중요성에 비교하여 사학계의 냉대를 받기까지 했다.
홍 연구원은 그의 논문에서 “1925년 일제 측 통계를 보면 유럽 내 한인은258명으로, 이 가운데 33명이 요주의 한인으로 분류돼 있었다”며 “유럽 거주 한인들은 소수에 불과한데다, 생활도 불안정하고 넉넉하지 못한 가운데서도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조국 독립을 위한 다양한 선전, 외교활동들을 펼쳤다”고 밝혔다.
   홍 연구원은 “프랑스의 경우 한인노동자들이 주축이 된 재법한국민회(在法韓國民會)가 조직돼 파리한국통신부의 외교활동을 지원했으며 어려운 처지임에도 불구 한국독립을 위한 재정적 지원과 기근 등으로 생활이 힘든 국내 한인들에게 구휼금(救恤金-재난을 당한 사람이나 빈민을 돕는 데 쓰는 돈)을 보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독일에서 노동자보다는 한인 유학생이 주축 돼 결성된 유덕고려학우회는 구제활동과 대 임정 지원활동, 일제의 한인 학살에 대한 항일선전활동, 1927년 벨기에 피압박민족대회 대표자 파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며 “이는 독일 내 한인 유학생들의 강렬한 민족의식과 독립정신을 잘 보여주는 특별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홍 연구원은 “파리강화회 외교활동을 위해 신한청년단에서 파견된 김규식이 파리한국통신부를 설립, 유럽에서 처음으로 임정차원의 공식적인 외교활동을 펼치다 중단된 이후에도 유럽 거주 한인들이 자체적인 힘으로 비공식 선전, 외교활동을 벌여 나갔다”고 덧붙인 다음, “유럽 내 한인들의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은 여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약한 실정”이라며 “소수인데다, 생활조차 힘든 노동자, 고학생의 신분으로 벌인 이들의 활동은 세밀한 연구 등을 거쳐 정당하게 평가받아 마땅하다”고 역설했다.

    홍 연구원이 밝혀낸 <재법한국민회>와 <유덕고려학우회>는 유럽 내에서 한인들이 세운 최초의 한인단체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활동은 우리나라 사회에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학계에조차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김규식의 파리한국통신부 정도가 간단하게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그 까닭은 간단하다. 당시 유럽에는 사회주의 바람이 강했다. 중국과 베트남 사회주의 혁명의 주역 주은래와 호지명이 프랑스 유학파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유럽에서 활동한 한국독립지사들 역시 모두가 사회주의 사상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국독립운동사를 제대로 정리하기 위해서라면, 유럽에서의 조국광복운동가들이 어떤 까닭으로 사회주의를 받아들였는지를 규명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학계에서 잊혀진 독립운동가 가운데 이미륵 선생과 더불어 이극로 선생을 꼽을 수 있다. 제 아무리 독립을 위해 한몸 바쳤더라도 중도파나 좌파라면 외면해 온 한국사회와 학계의 풍조가 만들어낸 외눈박이들의 학문이 판을 쳤기 때문이다. 친일파 얘기만 나오면 당시 상황을 면밀히 보자던 사람들이, 민족주의를 하려다 보니 사회주의로 기울었던 당시 상황에는 눈을 감는다. 1919년 독일 망명길에 오른 이미륵 선생이나 1922년 독일 유학의 길에 오른 이극로 선생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이미륵 선생보다 3년 늦게 독일에 온 이극로 선생은 1921년 1월 이미륵이 주도하여 창설한 <유덕고려학우회>에 김준연 등과 함께 적극적으로 참여, 관동대지진 때(1923년 9월 1일)베를린에서 재독한인대회를 조직해 일본의 조선인 대량학살을 고발하고, 기관지 '헤바(Heba)'를 통해 한국 독립의 필요성을 유럽인들에게 전파했다. 
유덕고려학우회는 고학으로 고생하고 있는 유학생들의 구제활동, 임정지원활동, 대외선전활동, 국제대회 참가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그밖에도 포츠담에서 해마다 8월 29일을 국치일로 삼아 추모식을 갖고 나라 잃은 아픔과 독립의지를 되새겼다. 1924년에는 32쪽짜리 '조선의 독립운동과 일본의 침략정책'이라는 별도의 책을 내기도 했다. 가장 큰 관심을 끈 활동은 1927년 벨기에에서 열린 '피압박민족대회'에 한국대표단장으로서 독일대표 이미륵, 황우일, 프랑스 대표로 김법린(후일 동국대 총장), 그리고 때마침 유럽을 여행 중이던 허헌(후일 북한 부수상)을 신문기자 대표로 선정하여 참가했던 일이다. 이 회의에서 이극로는 '한국문제(The Korean 
 Problem)'라는 책자를 3개 국어로 펴내 각국 대표단과 기자단에 배포했다.
1942년 <조선어학회>으로 투옥된 뒤 광복을 맞았지만, 자진 월북한 뒤'문화어 운동'을 주도하고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의장, 조선어 및 조선문학연구소장 등을 역임하고 평양의 애국열사릉에 묻힌 이극로 선생의 경우는 공산주의자라고 하지만 그의 독립운동 사실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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