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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히틀러의 미스테리-자신 스스로에 대한 암살?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자유로니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조회 2,704회 작성일 02-03-07 17:40

본문

작성일 : 1999/10/21   조회수 : 127

■ 히틀러의 미스테리(슈피겔,99.1.18, 20세기역사조망시리즈)

   자신 스스로에 대한 암살

금세기를 히틀러를 빼놓고 얘기할 수 있을까. 여러모로 불충분했던 베르사이유 평화조약은 히틀러를 막지 못했다. 바이마르공화국이 무너진 후 어떻게 히틀러제국이 그토록 빨리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을까? 히틀러는 그렇게 짧은 시간에 어느누구도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냈다. 또 어떻게 서방열강과 이탈리아로부터 그토록 많은 양보를 받아낼 수 있었는지?

1936년 프랑스는 라인강서안지역 비무장지역에 히틀러가 군대를 들여 보내도 보고만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양보는 1938년 유태인박해가 시작된 뒤에도 나왔다. 그렇다. 히틀러가 자기 약속을 깨고 잔인하게 체코의 잔재를 청산하고 프라하의 Hradshin에서 유유히 자신의 잠자리를 편 뒤에도 양보는 계속 됐다. 끝없는 양보는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키기 바로 14일전까지도 계속 되었던 것이다.

쳄버린 이 위무정책(Appeasement)을 폈다는 것만으론 설명이 안된다. 그 양보의 기초엔 완전히 서로 다른 두 컨셉트가 놓여 있다. 전쟁에 염증을 낸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히틀러에 맞서 그를 떠 볼 마지막 비장의 카드를 사용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히틀러가 돈이 딸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히틀러는 1939년 1월 제국은행장에게서 지휘권을 뺏어왔다. 챔버린은 그 히틀러에게 수십억 융자를 제공했다. 히틀러가 그 진 빚을 독일국경너머에서 벌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서방은 히틀러가 폴란드의 바다로의 통로인 단찌히를 먹을 때도 그 음모에 상담역을 해주면서 방관했다. 이 모든 것은 사실상 전쟁없이는 도달하기 힘든 양보들이었다. 이 모든 양보의 저변엔 4대주요 서방 열강들이 소련에 대항하는 일종의 방어동맹을 맺어야 한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영국의 양보에는 영국인다운 생각이 깃들어 있기도 하다. 정치가 사람들을 놀래켜서는 안된다. 모든 분쟁은 평화회담에서 해결하리라. 아니나 다를까 보호구역 뵈멘과 뫼렌에 자치권을 되찾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전쟁에 광분한 히틀러는 이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을 뿐이다.

히틀러는 진정 전쟁없이는 얻을 수 없는 것을 원했다. 동구권을 제패하는 것! 늑대같은 본성을 가진 그는 독일이 1차대전때처럼 재원이 충분하지 않았음에도 평화제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독재자의 심리상태는 오늘날까지도 해명되지 않고 있다. 평화로이 살고 있던 서방열강들은 그의 피에 대한 탐욕의 명백한 증거를 볼 때까진 끝내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그러나 사실 히틀러는 전혀 피를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히틀러가 전쟁을 가을에 시작하기로 확정해 놓고도 그 전쟁책임을 이미 1939년 1월부터 세계유태인들에게 뒤집어 씌웠던 것은 오늘날 볼 때 거의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유태인을 고려하지 않기는 독일국경 너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유태인은 항상 마지막 고려의 대상이었다.

이 전쟁의 화신은 전쟁으로 가는 자신의 삶의 도정에서 여러번 위기를 넘겼다. 1923년 유치하기까지 한 Feldherrnhalle로의 진군때 하필이면 그 총알이 히틀러 바로 옆의 Scheubner-Richter를 맞출 건 뭔가.

히틀러가 몰락한 것이 어떤 실수때문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상투적인 대답은 이렇다: 그는 전쟁을 시작해서는 안됐었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기고만장하도록 만들었는지는오늘날 우리로선 도저히 그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다.

  그는 부단없이 자신의 몰락을 향해 자신을 몰아갔다. 행운의 여신은 이 벼락부자를 한없이 비행기 태웠다가 마지막에는 볼 것없이 패대기쳐 버렸다. 동물적인 본성을 가진 그가 이런 자신의 운명에 대해 전혀 예감하지 못했으리라고는 보기 힘들다.

히틀러가 올바른 때가 왔을 때 죽을 수 있는 행복을 누리기엔 1939년 9월 22일은 아직 일렀다. 이제 막 시작일 뿐이었다. 아직도 해야할 일이 많다. 그에겐 자신의 개인적 운명을 명백하게 볼 수 있는 눈이 있었다. 그는 이제 승리 아니면 자살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그뿐이다. 더 이상 무엇을 사죄하란 말인가.

그러나 히틀러도 자신의 일생에서 딱 한번 사죄를 한적이 있다. 1944년 여름 바르샤바에 집결한 폴란드지하군대가 반란을 일으켰다. 저항은 2개월이나 계속되었다. 히틀러는 이 전투에서 폴란드를 회유하기 위해 자기부하 백러시아 SS책임자인 Bronislaw Kaminski를 총살시킬 정도로 잔인했다.

  당시 Himmler가 개최한 "명예로운" 항복의 행사에서 Bor-Komorowski 폴란드측 사령관이 SS장군에게 손을 내미는 사진이 아직 남아 있다. 이 폴란드의 항복때 Eva Braun의 동생인 SS장교 Hermann Fegelein도 함께 참석하고 있었다. 그는 평화롭던 시절엔 Bor-Komorowski와 함께 승마를 타던 사이였다.

이 바르샤바 봉기에서 생존해 포로가 된 이들은 포로수용소나 외국으로 보내졌다. 이것은 나찌가 "인간이하의 슬라브인"(Untermensch)을 마치 "동료"처럼 대접한 유일한 경우였다. Fegelein은 그후에 평범한 탈주죄목으로 총살 당했다. 히틀러와 그의 정부 Eva Braun이 자살을 감행하기 이틀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당시 동구에서 흔히 일상사로 자행되었던 살인자들의 행각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 놀라운 사례는 아직도 해명이 되지 않고 있다. Bor Komorowski도 전후에 이것에 대해 어떤 설명도 하지 않고 침묵했다.

루즈벨트, 레닌, 스탈린 - 혹은 드골이나 처칠까지 포함해서 - 그들은 언뜻보기엔 두려움을 모르는 기백의 소유자들로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당당함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 않으며 논쟁여지도 많다. 그러나 그들에 반해서  독일군에 의해 뒷받침되고, 독일교회에 의해, 특히 카톨릭에 의해 관용되었던 히틀러는 의심할 바없이 그를 빼곤 20세기를 상상하기 힘든 유일한 인물이다.

중세때는 이런 두려움을 모르는 인간을 죄많은 인간들을 위한 신의 형벌로 생각했었다. 처칠수상이 독일적인 사안에 대해 언급하고자 햇을 때 2차대전중 그리고 그후에도 "훈족야만인"(Hunnen)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스코트란드나 아일란드는 그렇지 않지만 오늘날도 영국인들은 독일인들을 가끔씩 훈족야만인 이라고 부른다.

1940년 히틀러 암살에 거의 성공할 뻔했던 Graf von Stauffenberg는 그를 "전쟁의  아들" (Sohn des Krieges selbst)이라고 명명했다. 서류상으로 증명할 길은 없지만 히틀러는 엘리트의 표상에 잘 맞아 떨어지는 인물이기도 하다.

히틀러, 그는 죽을 운명의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러기까지 너무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희생자를 필요로 했다. 그 자신의 작품: 자신스스로에 대한 암살을 완성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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